진중권이 하루 종일 쓴 글이라고 한다. 고민의 깊이가 느껴진다.
시대에 뒤쳐진 자가  국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우리 또한 뒤쳐지지 않았는지 한번 생각해보면서 앞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MB는 유통기한 30년 지난 '우파의 답례품'
좌파의 재앙이 아니라 국민적 재앙으로 등극한 이명박 대통령
09.06.26 09:45 ㅣ최종 업데이트 09.06.26 09:45 진중권 (angelus)
  
▲ MB는 '국가적 재앙'? MB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보수층에서 더 강하게 나오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소설가 복거일, 자유선진당 총재 이회창, 한나라당 전 윤리위원장 인명진.
ⓒ 남소연 이종호
복거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좌파의 선물이었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우파의 답례품이다." ('시론: 우파(右派)의 답례품' <조선일보> 2009년 6월 14일 자)


소설가 복거일의 말이란다. 이 블랙유머에는 MB라는 암담한 '현상'을 바라보는 보수우익의 민망함이 담겨 있다. 결국 '너희도 노무현을 주지 않았느냐, 그러니 대충 비기자'는 거다. 하지만 '500만 조문 인파'를 '떡 돌리는 분위기'와 등가 교환하자는 제안은, 그가 좋아하는 시장경제의 논리에 비추어 봐도 악덕상혼인 듯싶다. 아무튼, 자기들이 봐도 MB가 재앙은 재앙인가보다.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임명된 뒤 쓰레기보다 못한 짓"


복거일에게는 MB가 좌파에게만 골라서 재앙이면 좋겠지만, 분위기를 보건대 지금 그는 좌우를 초월한 국가적 재앙으로 등극한 듯하다. 왜냐하면, 그를 성토하는 목소리는 외려 보수층에서 더 강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의 말이다.


 "(이명박 정부가) 우에 와 있다면 최소한 우쪽에 있는 사람들은 환영하고 좋아해야 할 텐데 지금 우쪽에 있는 사람들도 대통령을 맹렬히 비판한다." ('이회창. 대통령 주변에 정신 빠진 사람 많다' <조선일보> 2009년 6월 24일 자)


MB 정권을 지지하거나 지원했던 이들도 그동안 드러난 'MB 본색'에 많이 당혹한 모양이다. 한때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냈던 인명진 목사의 말이다.


"이 대통령이 아니라고 해도 많은 국민들은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 분명 민주주의가 후퇴했는데 후퇴하지 않았다고만 하니 국민들이 말이 안 통하는 절벽을 마주한 것처럼 답답해하고 절망하는 것이다." ('정권 쥐고 1년 반…사회통합 못 한 건 대통령 책임' <한겨레> 2009년 6월 19일 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치를 '악(惡)'이라고까지 불렀던 가톨릭 원로 정의채 몬시뇰. 그는 MB 정권이 출범했을 때에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몬시뇰 역시 MB에 대해서 쓴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미 정상회담 후 이 대통령이 귀국하면 어떤 변화가 올 것으로 봤지만 개각도 하지 않고 국정 기조도 바꾸지 않는다고 측근들이 전하니 의외(다). … 왜 이렇게 민심이 떠났는지 겸손한 마음으로 생각해보고 일대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 2009년 6월 20일)


한나라당 쇄신위에서는 급기야 MB의 측근들을 '쓰레기'라 부르는 강도 높은 비판까지 나왔다. 파문을 우려한 원희룡 위원장이 부랴부랴 비보도를 요청했지만, 무슨 일인지 <조선일보>에서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자기들이 봐도 분위기가 심상찮은 모양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회의를 해 본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95%를 (이 대통령이) 혼자 얘기한다. 이 대통령은 듣지를 않는다. … MB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도 아니고 그 어떤 프렌들리도 아닌 단지 '캠프 프렌들리'(다).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임명된 뒤 쓰레기보다 못한 짓을 하는 것이 문제(다)." ('권영준, MB 정권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임명돼' <조선일보> 2009년 6월 19일 자)


"지지율과 리더십, 두 다리 모두 풀린 '명바라기' 여당"


정부가 그릇된 길을 가면 국회가 견제해야 하나, MB라는 제왕 앞에서 여당의원들은 꼭두각시가 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여당'의원이기 이전에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정부에서는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쓰레기보다 못한 짓"을 한다면, 국회에서는 '찌꺼기 같은 사람들'이 '찌꺼기보다 못한 짓'을 한다고 할까? 그러다 보니 지지층 사이에 걱정과 냉소의 분위기가 퍼지고 있단다.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이 전하는 민심이다.


"(유권자들은) 무슨 일이 있든 간에, 한나라당이 있든 없든 지금보다 더 나빠지기 어렵겠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지지층 사이에서도 걱정과 냉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걱정스럽다." ('정몽준 , 한나라, 정당도 아니라는 비판 많아' <연합뉴스> 2009년 6월 22일 자)


정부야 막 나간다 하더라도, 여당은 유권자의 민심을 대리하고 대의해야 한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민심을 등지고 청와대만 바라보는 '명바라기'가 되었다. 대통령이 조종하는 '마리오네트'(실로 매달아 조작하는 인형극) 같은 정당에 정치적 존재감이 생길 리 없다. 지난 22일 한나라당 쇄신특위에서 급기야 여당이 '두 다리가 풀렸다'는 진단까지 나왔다.


"한나라당의 지지기반 약화는 지난해 총선 이후 실시된 보궐선거, 교육감 선거에서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 한나라당의 현 상태는 두 다리 즉, 지지기반과 리더십이란 두 다리가 모두 풀리고 있는 국면이다." ('한나라당은 지지율과 리더십의 두 다리가 모두 풀린 권투선수다' <국민일보> 2009년 6월 22일 자)


이 상태가 계속되면 내년 지방선거에서마저 패할 수 있다. 게다가 그 선거는 공교롭게도 노무현 서거 1주기와 겹치지 않는가? 지방선거에서 패하면, MB는 즉시 레임덕에 빠진다. 이 시나리오가 두려웠나 보다. 마침내 <조선일보>에서 MB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사설을 실었다.


"정치적 고려 없이 결정한 조각(組閣)이 민심 이반의 출발점이었다. 광우병 사태와 촛불시위는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이라는 대통령 정치의 기본을 소홀히 한 탓이었다. … 지금 정계 밖 시중 여론은 물론이고 한나라당 안에서조차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의 전망을 대단히 어둡게 보고 있다." ('사설: 대통령의 본업은 정치다' <조선일보> 2009년 6월 19일 자)


'측근형'과 '돌파형'... "대통령 주변 정신 빠진 사람 많다"


  
<조선일보>는 "이른바 4대 권력기관장 자리가 모두 이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사람들로 채워지게" 되었다면서 원세훈 국가정보원장과 백용호 국세청장 내정자는 '측근형'으로,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와 강희락 경찰청장은 '돌파형'으로 분류했다. 사진 왼쪽부터 원세훈, 백용호, 천성관, 강희락.
ⓒ 남소연 유성호
원세훈

여기에 올린 첫 번째 글에서 정부운영과 기업운영의 본질적 차이를 지적하며, '대통령이 국가를 기업으로 착각하다 보니 정치가 사라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흥미롭게도, <조선일보>에서 같은 진단을 내렸다.


"이 대통령의 '정치 혐오증'이야말로 국정을 헝클어뜨린 근본 원인이었다. … 이 대통령의 참모들에 따르면 "대통령은 자신은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며, 정치는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 그러나 언뜻 비효율적이라고 보이는 정치야말로 각종 이해와 욕구를 수렴해 국민 통합을 이뤄가면서 나라를 이끌어가는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위의 사설)


웬일일까? <동아일보>에서도 '정치가 없다'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읽어 보니 제목과 내용이 따로 논다. 의미의 파괴를 시도하는 다다이스트의 아방가르드 실험이다. '정치가 없다'는 말을 <동아>는 이렇게 이해한다.


"현대사회에서 갈등은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한 현상이다. 정치는 이런 갈등이 공동체의 균열을 초래하지 않도록 관리 조정 해결할 책무가 있다. … 정치권은 대화와 타협을 포기하고 오히려 갈등을 부채질하면서 정략적으로 이용하기에 급급하다. 민주당은 일방적 요구사항을 담은 이른바 5대 선결조건을 내세워 국회 개회를 가로막고 있다. … 정치를 작동 불능 상태로 만든 야당들의 횡포야말로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독재이다. ('사설: 정치가 없다' <동아일보> 2009년 6월 22일 자)


그냥 막 가라는 주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조선>과 <동아>의 수준차를 본다. 아무튼 MB의 행보를 놓고, 보수층에서도 이렇게 견해가 갈린다. MB는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까? 사고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대답은 분명할 것이나, MB가 어디 정상적으로 사유하는 사람이던가? 그가 내놓은 인적쇄신안을 보자.


"청와대 주변에선 1순위가 '측근형', 2순위가 '돌파형'이란 말이 나온다. 원세훈 국정원장과 백 국세청장 내정자는 … 이 대통령의 친위부대로 분류된다. … 천 검찰총장 내정자와 강희락 경찰청장은 …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로 분류된다. 천 내정자는 용산참사·PD수첩 사건 수사 등을 지휘하면서 이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고, 강 청장은 최근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한 '조문 정국' 수습 과정에서의 역할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일을 해보면서 권력기관일수록 자신의 생각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여기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권력기관장 빅4(국정원장·검찰총장·국세청장·경찰청장), MB 뜻 읽는 사람들' <조선일보> 2009년 6월 23일 자)


한마디로, 이번 인사의 메시지는 공안라인을 더 강화하겠다는 얘기. 이를 두고 '기수'를 파괴하는 혁신이라 자화자찬하나, 어차피 MB는 조직 내의 기수서열에는 아무 이해관계가 없다. 그의 이해는, 주군을 위해서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상황을 '돌파'해내는 돌쇠들을 '측근' 자리에 앉히는 데에 있다. 기수 파괴의 '혁신'이라는 화장발 아래 숨은 '쌩얼'은 친정체제로 인한 문제를 친정체제의 강화로 돌파한다는 어이없는 역행이다.


청와대가 내놓은 또 하나의 대책은 이른바 '중도실용론'이라는 것. 이는 문제의 진정한 원인을 슬쩍 다른 데로 돌리려는 꼼수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가 이를 제대로 꼬집는다.


"이를 근원적 쇄신책이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방향이 잘못됐다. … 국정혼란의 원인은 대통령이 설득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지금 대통령이 중도에 있지 않고 우에 와 있기 때문이 아니다." ('昌, 대통령 주변 정신 빠진 사람 많다' <연합뉴스> 2009년 6월 24일 자)


이 총재의 말대로, "대통령 주변에 정신 빠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주변'만이 아니라 '중심'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박정희와 김일성 모델 추종하는 MB의 국정철학


MB는 대체 왜 저러는 걸까? 문제는 그의 측근들이 잘 이해한다는 그의 "국정철학"에 있다. 정확하게 그의 '국정철학'은 1970년대 박정희 모델에 사로잡혀 있다. 동시에 그것은 남한에 앞서 산업화를 이룩한 김일성 모델이기도 하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대개 '근대화'에 대한 관념을 가진 엘리트 집단이 나타나 국민을 대상으로 카리스마 정치를 펴는 경향이 있다. 이 권위주의적 통치는 물론 아직 자연의 속도에 묶여 있는 농민의 전근대적 신체를 신속하게, 그러다 보니 강제로, 기계의 속도에 맞추기 위한 것이다.


남한에서는 그 엘리트 역할을 불행히도 박정희가 이끄는 군인집단이 맡았다. 국민 대다수가 농민으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그나마 군대는 현대전을 치러본 경험이 있었다. 그들의 신체는 이미 소총과 기관총, 대포와 함포, 전차와 항공기 등 근대적 기계와 결합되어 있었다. 산업화 역시 결국 인간의 신체를 강제로 기계에 뜯어 맞추는 과정이기에, 그 시절에는 군인적 신체가 산업적 신체를 찍어내는 주형이 되었다. 1980년대 이후 척결해야 할 퇴물 취급을 받은 '군사문화'라는 것이 한때는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었다.


남조선의 박정희와 북조선의 김일성. 남북한에서 근대화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두 인물의 특징은 '현장정치'를 좋아했다는 것. 박정희는 농촌이나 산업현장 시찰을 좋아했고, 김일성 역시 현장을 돌아다니며 시시콜콜한 것에까지 교시를 내리곤 했다. 대통령이 모내기해야 농가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수령님이 교시를 내려야 생산성이 오르는 것도 아닐 게다. 그것은 '가장 높은 권위가 가장 낮은 곳에 임한다'는 강림 드라마로 인민을 감동시켜 생산에 동원하는 일종의 선무활동이다.


노 전 대통령은 강림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현장에 내려가 생색을 내봤자, 괜히 폐만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사단장 방문을 앞둔 부대 분위기는 다들 경험해 봤을 게다. 실제로 한 일주일간 아무 일도 못한다.) 반면 MB는 유난히 '현장정치'를 좋아한다. 현장감독 출신이라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제 정치적 이상을 박정희라는 '산업화 영웅'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가 제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었듯이, MB도 제 형상대로 공공기관장을 찍어내는 모양이다. 기사를 보자.  


"종합해보면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가이드라인을 충족하지 못한 기관장들이 상당한 감점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1년에 100건에 이르는 직원과의 만남을 가진 CEO, 100번 정도 현장을 돌아다닌 도공 사장' 등이 우수 사례로 꼽힌 점을 고려하면 이번 평가의 방향성은 더욱 명확해진다. 현장과 수치를 강조하는 '이명박 스타일'이다." ('공공기관장평가=충성도 평가?' <아이뉴스> 2009년 6월 19일 자)


누군가 책상에 앉아 구상을 하고 있다고 하자. MB는 아마 그를 보고 '놀고 있다'고 할 것이다. 반면, 누군가 현장에 내려가 부하직원들 귀찮게 한다 하자. MB는 아마 그를 보고 '일 잘한다' 할 것이다. 이게 다 외국에서 만든 수입기계에 맞추느라 신체를 빨리빨리 움직여야 했던 시절의 잔재다.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진다. 이번 위기를 맞아 청와대에서 서민 행보를 강화하겠단다. 기사의 부제가 재미있다. "가슴 뭉클 서민 행보 부각."


"현장 행보를 집중 부각시키는 '감성 코드'는 청와대가 준비하는 또 다른 소프트웨어다. 청와대 직원들은 지난해 '이 대통령의 가락시장행과 박부자 할머니의 눈물'을 국정 최고의 감동적인 장면으로 꼽는다. 이 같은 가슴 뭉클한 현장 행보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법치-서민 투트랙에 감성 접목' <헤럴드경제> 2009년 6월 23일 자)


  
2008년 12월 4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노점에서 우거지 파는 할머니를 안아주며 위로하는 모습(왼쪽)과 "이명박 김일성 히틀러 그들의 공통점"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오른쪽).
ⓒ 인터넷 화면 갈무리
이명박

청와대 직원들이 "국정 최고의 감동적인 장면"으로 꼽은 그 장면은 박정희와 김일성이 즐겨 연출하던 장면이기도 하다. 가령 남한 가락시장의 사진과 북한 군부대의 그림을 비교해 보라. 너무나 비슷하지 않은가? 청와대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또 다른 소프트웨어"는 "가슴 뭉클한" 북한식 "감성 코드"였다. 청와대의 마인드가 산업화 초기에 꽂혀 있다 보니, 정서와 취향 역시 복고풍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MB의 "국정 철학"이 도대체 어느 시대에 고착되어 있는지 볼 수 있다.


MB가 보여준 유일한 가시적 성과는 '민주주의 후퇴'


MB는 박정희를 꿈꾸나, 그는 절대로 박정희가 될 수 없다. 지도자의 카리스마로 경제가 돌아가던 시대는 돌아올 수 없는 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박정희처럼 근대화의 영웅이 되고 싶은가? 그러면 대한민국에 있을 게 아니라, 서둘러 소말리아나 짐바브웨 국적을 취득할 일이다. MB는 자신이 박정희 비슷한 계몽군주라고 믿는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그는 계몽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다. 온 사회가 디지털로 이행을 완료했는데, 그는 저 홀로 산업화 영웅의 소설을 쓰고 있다. 그는 돌아올 수 없는 산업화의 로망(浪漫) 속에 사는 디지털시대의 돈키호테다.


박정희 그룹은 나름대로 선진적이었다. 대다수 국민이 농민이던 시대에 '근대화'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데타로 집권했기에 '정치적 정당성'은 없었으나, 적어도 그들은 '경제적 적합성'은 갖추고 있었다. 그 정권이 정당성의 부재 속에서도 유지됐던 것은 경제적 적합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룩한 고도성장은 결국 그의 무덤이 되고 만다. 경제발전과 더불어 정부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관치경제가 시대착오가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정당성을 잃은 그의 통치가 경제적 적합성마저 잃는 순간, 그는 부하에게 제거당하고 만다.


MB는 어떤가? 한국사회는 이미 산업화를 넘어 탈산업 사회로 이행했다. 고졸자의 87%가 대학에 가는 초고학력 사회, 최고의 IT 인프라를 가진 정보사회에서 유일하게 1970년대에 사는 게 바로 MB 그룹이다. 그들은 이 사회에서 상상력이 가장 낙후한 세력이다. 합법적으로 선출되었기에 '정치적 정당성'은 있지만, 산업화 초기의 모델에 갇힌 그들의 통치에는 '경제적 적합성'이 없다. 그럼에도 그가 통치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 정당성 때문이다. 그는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 그러니 '타도'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이게 국민의 답답함이다.


경제는 2~3년 전 수준으로 후퇴했다 ('경제지표들 여전히 2∼3년 전 수준' <연합뉴스> 2009년 6월 24일 자). '빅딜'은 허망한 망상으로 드러났다. 감세로 괜히 재정만 악화시켜 놓고, 수십 조의 추경을 편성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디어법으로 새 일자리 2만6천 개를 만든다 하나, 그 말을 믿으려면 IQ가 유인촌이어야 한다. 미디어는 광고를 먹고 살고, 광고시장은 한정되어 있다. 숟가락 개수를 늘린다고 밥이 느는가? 유일하게 쓸 수 있는 카드는 '4대강운하' 하나뿐인데, 워낙 시대착오라 실현될지 의문이다. 하지만 이마저 좌초하면 정권은 식물인간이 된다.


거국적 반대를 뚫고 시대착오적 경제 프로젝트를 강행하려다 보니, 정치도 개도국 수준으로 돌려놔야 하는 것이다. 지난 정권 하에서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성과를 누렸다. 그러다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깨닫자 민주를 돈 안 되는 허망한 가치로 여기고 MB에게 표를 던졌다. 그런데 살리라는 경제는 못 살리고, 멀쩡히 누리던 민주적 권리만 빼앗아간다. 그러니 국민은 황당할 수밖에. '가시적' 성과를 좋아하는 MB. 유감스럽게도 그가 보여준 유일한 가시적 성과는 '민주주의 후퇴'뿐이다. 거리에 널린 전경들을 보라.


디지털의 경쟁력은 참여와 자율의 창발 효과


"이명박 대통령과 회의를 해 본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95%를 (이 대통령이) 혼자 얘기한다." ('권영준, MB 정권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임명돼' <조선일보> 2009년 6월 19일 자)

  

사회를 '매스게임'에 비교해 보자. 거기에는 두 종류가 있다. 가령 북한의 매스게임을 보자. 그 게임은 한 사람(혹은 몇 사람)이 머릿속으로 기획한 것이다. 매스게임에 참여하는 나머지 사람들은 누군가 기획한 그 프레임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기들 몸을 맞춰야 한다. 이런 매스게임에서는 한 사람이 두뇌가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수족이 된다. 이게 MB가 꿈꾸는 한국 사회의 이상적 모습이리라. 하지만 지도자가 '인풋'한 것을 인민들이 그대로 '아웃풋'해야 하는 사회는 결국 한 개인이 가진 두뇌용량의 한계에 갇히게 된다.


다른 유형의 매스게임도 있다. 천수만 새떼들의 비행. 새들은 누가 명령하거나 지도하지 않아도 하늘에 변화무쌍한 그림을 그려낸다. 촛불집회가 그것을 닮았다. 지도하거나 명령하는 사람 없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체적 효과를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이를 '창발'(emergence)이라 부른다. 우리 사회에 그런 유형의 집회가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토대에 변화가 생겼다는 신호다. 정보화 사회의 경제는 한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네트워크로 연결된 수많은 머리들의 창발 효과를 통해 발전한다. 디지털의 경쟁력은 바로 개별 주체들의 참여와 자율에서 나온다.


여기서 MB의 리더십이 얼마나 시대착오인지 보게 된다. 아직도 그는 2주일에 한 번 공중파에 나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혼잣말을 늘어놓는다. 어떤 알 수 없는 이유에서 그는 이를 '국민과의 대화'라 부른다. 솔직히 이런 경쟁력 없는 프로그램은 당연히 시장원리에 따라 퇴출되어야 한다. 굳이 해야겠다면 대학로에 소극장 빌려 모노드라마를 하면 되지 않는가. (연출은 유인촌씨가 맡는 게 좋겠다.) '빨간 피터의 고백'의 뒤를 잇는 '파란 명박의 고백'은 국민은 몰라도, 적어도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 정도는 감동시킬 것이다.


홀로 산업화 초기로 돌아간 MB


MB는 대체 왜 저렇게 뻣뻣하게 굴까? '인간-기계 인터페이스'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인간이 기계 앞에서 일하던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기계가 상수였다. 즉 일단 기계를 만들어 놓고, 그것의 동작과 속도에 인간의 신체를 강제로 뜯어 맞추었다. 그것은 물론 군대식 훈육과 숙련을 요하는 일이었다. 반면, 인간이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정보혁명의 시대에는 이 관계가 역전되어 인간이 상수가 된다. 예를 들어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의 디자인에서는 외려 컴퓨터를 섬세하게 인간의 신체에 맞추는 게 중요하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산업화 초기에 남한의 박정희와 북한의 김일성이 공히 '인간개조'라는 낱말을 사용했다. 이렇게 인민을 권력자에 뜯어 맞추는 게 산업화 초기 정치다. 정보화 사회는 물론 다른 종류의 리더십을 요구한다. 지난 노무현 정권에서 국민의 참여와 자율을 강조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MB는 어떤가? 그는 꿋꿋하다. 자신을 상수로 놓고 국민을 변수로 간주한다. 국민이 자기에게 맞춰야지, 자기를 국민에게 맞출 수는 없다는 것. 지금 디지털 국민들은 MB의 산업적 신체에 뜯어 맞춰지느라 생고생을 하고 있다.


얼빠진 언론이 만들어낸 자수성가 신화에 스스로 도취해 MB는 나 홀로 산업화 초기로 돌아갔다. 하지만 브레이크 없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맹점을 통해, 그의 개인적 불행은 곧 국가적 불행이 된다. '나의 표상이 너희의 세계다.'  히틀러의 말이 졸지에 현실이 된 것이다. 한국의 경제, 한국의 정치는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향수에 사로잡힌 사내의 개인적 로망에 갇혀 버렸다. 2MB. 괄호치고 확장불가. 졸지에 이게 우리가 아직 3년 반 동안 들어 살아야 할 세계의 최대용량이 되었다. (계속 이어집니다.)


피에쑤) "이명박 대통령은 우파의 답례품이다." 복거일씨, 착불로 반송합니다. 유통기한이 30년이나 지난 걸 보내주시면 어떡합니까?

덧붙이는 글 | 매우 긴 글임에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글을 '네이트'(거기에도 쪽글이 수백에서 수천 개까지 붙었다.), 혹은 블로그와 사이트에서 읽은 분들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사실 이명박 개인을 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왜 저러는지,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그런 그가 왜 대통령으로 뽑혔는지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야 이런 불상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막을 수 있지 않겠는가. 내게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 독자들이 있다. 각자 자기가 있는 곳에서 작은 할 일을 찾아보자. 이 글은 카피레프트, 맘껏 퍼가도 좋다. 하루 종일 걸려서 쓴 글이다. 힘들게 쓴 글이니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원고료 대신에 하루에 단 5분이라도 주위 사람들을 설득하는 작은 실천으로 보답해주셨으면 좋겠다.

 
Posted by 별이빛나는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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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미네르바 사육제

[진중권 칼럼] "가면무도회를 하는데 꼭 가면을 벗겨야 하는가"

기사입력 2009-01-12 오후 4:29:12

법치의 위기

MB호의 한국. 여기서 현실은 초현실이다. 현실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해괴한 일도 버젓이 벌어지는 게 이 나라 현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사건에 대한 외신의 반응이 전해졌다. <로이터 통신>은 이 소식을 '이상한 소식'(oddly enough)란에 실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는 "한 '웹 커뮤니케이터의 체포는 언론자유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보도했다. <뉴 아메리카 미디어>는 '미디어의 비판을 매장시키는 한국 불도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네르바를 체포한 것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터넷 인프라를 보유한 나라의 정부가 정보의 유통을 장악하기 위해 내놓은 조치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이명박 정권에 들어와 법치주의에 중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법의 적용이 해괴할 정도로 자의적이다 보니, 시민들은 어디까지 불법이고, 어디까지 합법인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됐다. 조중동에 대한 광고중단 운동을 처벌하려다가 여의치 않자 맥락이 다른 미국의 판례를 찾아다 들이대고, 유모차 시위하던 주부들에게는 엉뚱하게 '아동학대법'을 들이대겠다는 개그를 늘어놓는다. 미네르바를 잡아넣으려고 83년 전두환 정권이 만든 법을 부활시켰다. 심지어 군사정권도 쓰지 않아서 25년 동안 미라가 됐던 5공 시절의 악법이 느닷없이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관 뚜껑을 열고 다시 나온 것이다.

법 적용이 이렇게 자의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어떻게 안심하고 살 수가 있을까? 이렇게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몇몇 논객들은 자신이 올린 글을 미리 삭제하고 침묵으로 돌아섰다. 이른바 '칠링 이펙트'가 일어난 것이다. 법의 해석과 적용의 기준이 엄격하지 않을 경우 법은 이리저리 늘려 아무나 엮어 넣는 폭력의 도구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태의 본질을 보수주의자인 이회창 씨가 정확하게 지적했다.

"우리는 법치주의를 바로 봐야 한다. 실정법에 위반하기만 하면 무조건 처벌대상으로 보는 이른바 형식적 법치주의는 합법주의를 무기로 삼아 국민을 억압하던 국가독재시대의 유물이다."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도 우리에게 충격을 준다. 혐의 자체가 황당한데다가 도주나 증거인멸의 위험이 있는 것도 아니라, 영장이 기각이 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심지어 한나라당의 공성진 최고위원도 "미네르바 구속수사는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정두언 의원조차 "구속은 도주 우려가 있는 사람들이 대상인데, 그 사람은 자기가 글 쓴 것을 다 인정했기 때문에 구속까지 한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명색이 한나라당의 '국민소통위원장'으로서 입장이 난처했던 모양이다. 아주 불행한 일이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국민과 소통(?)하는 유일한 기관은 검찰과 법원이다.

법치의 위기

MB호의 한국. 여기서 현실은 초현실이다. 현실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해괴한 일도 버젓이 벌어지는 게 이 나라 현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사건에 대한 외신의 반응이 전해졌다. <로이터 통신>은 이 소식을 '이상한 소식'(oddly enough)란에 실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는 "한 '웹 커뮤니케이터의 체포는 언론자유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보도했다. <뉴 아메리카 미디어>는 '미디어의 비판을 매장시키는 한국 불도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네르바를 체포한 것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터넷 인프라를 보유한 나라의 정부가 정보의 유통을 장악하기 위해 내놓은 조치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이명박 정권에 들어와 법치주의에 중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법의 적용이 해괴할 정도로 자의적이다 보니, 시민들은 어디까지 불법이고, 어디까지 합법인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됐다. 조중동에 대한 광고중단 운동을 처벌하려다가 여의치 않자 맥락이 다른 미국의 판례를 찾아다 들이대고, 유모차 시위하던 주부들에게는 엉뚱하게 '아동학대법'을 들이대겠다는 개그를 늘어놓는다. 미네르바를 잡아넣으려고 83년 전두환 정권이 만든 법을 부활시켰다. 심지어 군사정권도 쓰지 않아서 25년 동안 미라가 됐던 5공 시절의 악법이 느닷없이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관 뚜껑을 열고 다시 나온 것이다.

법 적용이 이렇게 자의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어떻게 안심하고 살 수가 있을까? 이렇게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몇몇 논객들은 자신이 올린 글을 미리 삭제하고 침묵으로 돌아섰다. 이른바 '칠링 이펙트'가 일어난 것이다. 법의 해석과 적용의 기준이 엄격하지 않을 경우 법은 이리저리 늘려 아무나 엮어 넣는 폭력의 도구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태의 본질을 보수주의자인 이회창 씨가 정확하게 지적했다.

"우리는 법치주의를 바로 봐야 한다. 실정법에 위반하기만 하면 무조건 처벌대상으로 보는 이른바 형식적 법치주의는 합법주의를 무기로 삼아 국민을 억압하던 국가독재시대의 유물이다."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도 우리에게 충격을 준다. 혐의 자체가 황당한데다가 도주나 증거인멸의 위험이 있는 것도 아니라, 영장이 기각이 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심지어 한나라당의 공성진 최고위원도 "미네르바 구속수사는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정두언 의원조차 "구속은 도주 우려가 있는 사람들이 대상인데, 그 사람은 자기가 글 쓴 것을 다 인정했기 때문에 구속까지 한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명색이 한나라당의 '국민소통위원장'으로서 입장이 난처했던 모양이다. 아주 불행한 일이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국민과 소통(?)하는 유일한 기관은 검찰과 법원이다


허위사실 유포?

허위사실 유포로 남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은 이상, 그것을 이유로 처벌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해괴한 것이다. 그런 법이 어느 나라에 있던가? 아마 5공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런 해괴한 법도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리라. 문제가 된 전기통신법은 헌재에서 위헌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백번 양보하여 그것을 실정법으로 인정한다 하자. 만약 미네르바가 공익을 해칠 악의를 가지고 있었다면, 유포한 대부분의 글이 허위여야 한다. 하지만 그의 글의 대부분은 허위가 아니었고, 그 중의 사소한 일부만이 허위로 드러났을 뿐이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이것이 "법리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검찰에서 혐의를 두었다는 그 두 가지 허위사실을 보자. 하나는 작년 7월에 올린 것으로, "외환ㆍ예산ㆍ환전업무 8월1일부터 전면 중단"이라는 내용. 하지만 당시 검찰에서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었다. 체포의 이유가 된 것은 역시 두 번째 것으로, "주요 7대 금융기관 및 수출입 관련 기업에 달러 매수를 금지하는 긴급공문을 전송했다"는 내용의 글 그런데 민주당 이석현 의원에 따르면, 정부에서 7대 시중 은행 간부들을 모아놓고 외환매입 자제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그 요청의 형태가 '공문'이라는 문서였냐, '회의' 혹은 '전화'였냐는 아주 지엽적인 사실뿐이다.

뉴스를 보니 재경부에서도 외환매입의 자제를 요청한 사실은 인정한 모양이다. 다만, 그것은 명령이 아니라 협조였단다. 하지만 그것을 '협조'라 부르느냐, '명령'이라 부르느냐는 한갓 말장난에 불과하다. 결국, 외환매입의 자제를 요청한 형식이 '문서'였느냐 '구두'였느냐가 '긴급체포'되어 '구속영장'을 받는지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되어 버린 셈. 그런데 그게 심지어 국가신인도씩이나 떨어뜨렸다니, 이 얼마나 황당한가? 인터넷에 글 올리는 데에 이제 국가신인도까지 고려해야 할 모양이다. 국가신인도에 영향을 끼친 게 죄가 된다면, 대통령과 강만수 경제팀은 감옥에서 대체 몇 년을 살아야 할까?

차라리 네티즌교육헌장을 제정해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사이버에 태어났다"고 가르치는 게 좋겠다. '중대한 사안'이라 구속했다는 얘기도 우습다. 구속을 피하려면 이제 인터넷 글질하면서 '이 글이 중대한 사안이 될지, 안 될지' 예측해야 한다. 글이 재수 없게 중대한 사안이 되거나, 중대한 사안으로 간주되면, 바로 구속이다. 듣자 하니 검찰에서는 미네르바 가족친지의 계좌를 뒤진단다. 5공 시절의 공안수사를 보는 듯하다. 네티즌들은 "차라리 강만수 씨 경제팀의 가족과 친지들의 계좌를 뒤지는 게" 더 성과가 있을 것 같다고 비아냥댄다.

검찰에서는 정부 측 사람들 만나 구체적인 피해액수까지 산정했단다. 미네르바의 글과 환율 사이의 인과관계를 무슨 수로 확정한단 말인가? 그날 달러 사고판 사람들 만나서, 그 글 읽고 매매를 결심했다는 자술서를 받을 것인가? 외환시장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달랑 인터넷 글 하나란 말인가? 12월 평균치보다 거래량이 많았다느니 적었다느니 하는 얘기는 유치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러다가는 한강물이 예년보다 며칠 빨리 언 것도 증거가 되겠다. 소설을 써서 조중동의 신춘문예에 응모하려나? 응모만 하면 조선일보 동인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다.

미네르바는 왜 떴는가?

아마추어에게 농락당한 게 사무쳤던 모양이다. 조중동에서는 미네르바를 공격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래봤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미네르바의 칼럼이 적어도 대통령의 발언이나 강만수 경제팀의 예측보다는 나았다는 점이다. 그의 선풍적 인기의 배경에는 정부 여당의 무지와 무능이 있다. 그 점은 심지어 조선일보에서도 인정을 한다. "사이버 논객 미네르바가 화제다. 이 역시 도참의 일종으로서 사회 불안과 정부의 무능이 겹칠 때 발생하는 전형적 현상이다. 무능한 정부란 민심과 맞서 싸우는 정부를 뜻한다." (조선일보 이덕일 사랑 <도참과 미네르바> 2008.11.26)

그러는 조선일보는 얼마나 유능할까? 무명의 인터넷 논객이었던 미네르바를 일거에 '경제대통령'으로 끌어올린 사건이 있었다. 그 발단이 된 것은 조선일보였다. 산업은행에서 리먼 브러더스 인수를 위한 협상을 하고 있던 시절, 조선일보는 칼럼과 사설을 이용해 이렇게 주장했었다.

"금융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가다 보면 사기꾼에게 속기도 하고 시장이 나빠져 깡통 차는 사례도 생기겠지만 수업료를 치르는 셈 쳐야 한다."(조선일보 송희영 칼럼 <누가 월스트리트를 두려워하랴> 2008.08.08)

"그만큼 메릴린치·리먼과 같은 초대형 빅딜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투자자의 결단(決斷)을 필요로 한다. 만년 금융 후진국인 우리가 요즘과 같은 가격에 세계 일류를 인수할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리먼의 위험만큼 기회가 커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조선일보 데스크칼럼 <월스트리트 울리고 웃긴 산은(産銀)> 2008.08.27)

"산은의 리먼 브러더스 인수는 철저한 손익계산 위에서 하라. 중요한 건 산은의 마음가짐이다. 철저하게 득실을 따져 인수를 결정하고 그 결정에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면 해볼 만한 투자다." (조선일보 사설 <산은(産銀)의 리먼브라더스 인수는 철저한 손익(損益)계산 위에서> 2008.09.03)


한 마디로, "위험만큼 기회가 커" 보인다고 "해볼 만한 투자"를 했다가 "깡통 차는 사례"를 만들어 놓고는 "수업료를 치르는 셈"으로 치자는 얘기다. 하지만 자기들의 모자라는 머리에 대한 수업료를 왜 국민이 치러야 하는가? 그러니 그 수업료는 나중에 미네르바에게 개인적으로 지불하는 게 좋겠다. 조선일보가 이러고 있을 때, 미네르바는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을 정확히 예측했다. 이 사건으로 미네르바는 일약 '경제대통령'으로 떠오르게 된다. 미네르바를 영웅으로 만든 일등 공신은 바로 조선일보였다.

미네르바 띄우기

중앙일보는 어떤가? '진보진영의 미네르바 영웅 만들기' 운운하며, 아주 앙증맞게도 기사 속에 슬쩍 내 사진과 이름을 끼워 넣는다. "미네르바 신드롬의 본질인 발언의 자유를 제치고, 그의 예측이 얼마나 맞았는지 채점하는 식의 방송을 한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이 미네르바 영웅 만들기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예측'이라는 놀이에 별 관심이 없기에, 내게 이 사태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표현의 자유'의 문제다. '영웅 만들기'라 부르려면, 적어도 이 정도 얘기는 한 적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미네르바에게선 이처럼 '환율 프로'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취재팀은 460여 쪽에 이르는 '미네르바 글모음' 파일과 기고문 등을 조목조목 짚어봤다. 그는 시장을 비교적 잘 보고 '엔캐리 크로스 거래, 투신의 다이내믹 헤지, 수출업체 리딩·래깅 전략' 같은 전문용어를 술술 구사했다. '한·미 통화 스와프'도 비슷한 케이스다." (중앙일보 <'미네르바 예언'의 허와 실> 2008.11.23)

동아일보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썼다. 재미있는 것은, 미네르바 띄우기의 또 다른 공신이 동아일보였다는 사실. 동아일보의 자매지 <신동아>는 미네르바의 글을 실으며, "10월 이후의 환율 급등과 경기 변동을 정확히 예측해 '인터넷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며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던 사이버 논객 '미네르바'가 17일 발행된 월간 신동아 12월호에 장문의 글을 투고했다"며 자랑을 했다. <신동아> 편집장의 말이다.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여러 글에서 예민하게 다뤘다는 측면에서 보도할 가치가 있어 글을 실었다." / "그가 바라보는 한국 경제 메커니즘과 경제구조를 보는 시각이 충분히 보도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한국기자협회보 2008 11.20)

이러던 조중동이 이제 와서 미네르바가 '전문대 출신의 백수'라고 강조한다. 논리학에서 말하는 '대인 논증의 오류'의 학벌주의 버전이다. 그런데 그 좋은 학벌 갖고 조선일보는 뭘 했던가? 파산할 리먼 브러더스를 인수하자고 했다. 그 좋은 학벌 갖고 중앙일보는 뭐 했던가? 그 백수를 "시장을 비교적 잘 보고" "전문용어를 술술 구사"하는 "환율프로"라 추켜세웠다. 그 좋은 학벌 갖고 동아일보는 뭐 했던가? '전문대 출신의 백수'에게 기고를 받았다고 자랑을 했다. 그렇다면, 미네르바의 실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한나라당의 정책통으로 알려진 이한구 의원으로부터 객관적 평을 들어 보자.

"이번에 체포된 사람이 진짜 미네르바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진짜 미네르바고 독학을 해서 그 정도로 실력을 쌓았다면 대단한 실력파다." (연합뉴스 <이한구 "미네르바 맞다면 대단한 실력파"> 2009.01.09)

"인터넷은 가면무도회"

조중동이 이렇게 헤매고 있을 때, 오직 한 사람, 전여옥 의원만은 그가 아마추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단다. (쿠키뉴스 <전여옥 "미네르바와 신정아는 오버했다"> 2009.01.09) 역시 이 시대의 노스트라다무스다. 근데 그거 아는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이상하게도 늘 사건이 벌어진 다음에야 적중한다는 것. 전 의원의 기동은 <타짜>에 나오는 정마담의 그 유명한 대사를 연상케 한다. 그는 슬쩍 '미네르바=신정아'로 등치시키려 하나, 사실 둘은 경우가 많이 다르다. 신정아는 현실의 학벌을 위조하여 교수의 지위를 얻은 반면, 미네르바는 가상의 정체성을 구축한 대가로 현실에서 직위를 얻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검찰에서 당장 사기죄를 적용했을 게다.

전 의원은 인터넷을 "가면무도회"라고 부른다. 멋진 표현인데, 아마 그는 그것을 부정적으로 의미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상세계에서 또 다른 자아(alter ego)를 구축하는 것은 인터넷의 잠재성에 속한다. 가령 현실의 무대리가 인터넷 게임의 세계에서는 10만의 추종자를 거느린 영주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자신을 늘 타박하는 과장님도 그 추종자 속에 들어 있을 수 있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무대리는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었으나 현실에서는 인정받지 못한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없었을 것이다. 한나라당의 이한구 의원이 "대단한 실력파"라고 평가한 미네르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가면무도회'를 통해 'myself'는 이제 'myselves'가 된다. 미디어 철학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자신을 한 가지 가능성에만 묶어놓는 정체성(identity)에서 해방되어 자아를 복수화(multiply)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인터넷의 능력이다. 가상적 아이디의 정체를 까는 것, 그것을 법률로 강제하는 인터넷 실명제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사이버 공간의 특수성을 법적으로 무시하겠다는 얘기인데, 과연 그것이 디지털의 시대정신에 얼마나 적합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인터넷은 가면무도회다. 그런데 가면무도회를 하는데 꼭 가면을 벗겨야만 하는가?


라비 쿠퍼(Robbie Cooper)라는 사람은 이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에서는 현실의 인물과, '세컨드라이프'에서 그의 아바타를 병치시킨다. 첫 번째 작품에서처럼 현실과 가상의 정체성이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 살아가는 가녀린 아이가 가상에서는 막강한 로보캅이 될 수도 있고, 30~40대로 보이는 뚱뚱한 아저씨가 가상세계에서는 날씬한 10대 소녀의 행세를 할 수도 있다. 이것이 사이버 공간의 논리다. 그런데 굳이 실명을 까고 정체를 밝혀 놓은 다음 저 아이를 사기꾼이라 부르고, 저 남자를 변태라 부르는 게 과연 온당하겠는가?

두 개의 대통령

미네르바도 사이버 공간에서 저렇게 놀 수 있었고, 본인도 그러기를 원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의 인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중앙일보는 그 이유를 "정부에 대한 불신이 미네르바 열기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했다. (중앙일보 <'미네르바 예언'의 허와 실> 2008.11.23) 나아가 이 신문은 "정부의 과민 대응도 미네르바를 키웠다"고 지적하며(중앙일보 <`미네르바` 한마디에 술렁대는 대한민국> 2008.11.23), "미네르바를 한 단계 더 키워준 것은 한동안 그와 전쟁을 벌이다시피 한 기획재정부였다"고 말한다. (중앙일보 <'미네르바' 소동 거품 키운 조연들> 2009 01.12)

비판에 과민한 정권은 '가상의 열광'을 '현실의 위협'으로 간주했다. 사이버 공간의 '인터넷 대통령'과 현실공간의 '이명박 대통령'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존재질서에 속하나, 대통령은 둘일 수 없다는 걸까? 현실의 권력은 가상의 대통령을 자신의 도전자로 여겼다. 은유를 현실로 받아들인 것이다. 청와대 임삼진 시민사회비서관은 "미네르바는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요구했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미네르바에 대한 처벌 가능성을 언급했다. 재정부에서 뒤늦게 부인하고 나섰지만, 동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강만수 장관이 최근 TV 토론에서 "공개적으로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상황에서 미네르바가 뜻밖의 경력 소유자로 드러나자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누가 이런 결과를 상상했겠느냐. 처지가 참 난처해졌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경제 스승' '시민 지성' 치켜세웠던 지식인들 "…"> 2009.01.10)

인터넷은 가상현실. 거기에 떠도는 얘기들은 일단 존재론적으로 가상의 지위를 가지며, 또 그렇게 수용되어야 한다. 미네르바의 글도 마찬가지다. 그의 글은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내놓는 보고서가 아니라, 일개 네티즌의 주관적 분석에 불과하다. 미네르바의 불행은 그의 예측이 결정적인 순간에 정부 여당이나 보수언론보다 정확한 것으로 드러난 데서 시작했다. 가상공간의 경제분석이 공신력 있는 정부와 언론의 경제예측을 능가해 버리자, 무능한 정권에서 당혹감을 느껴 액션에 들어가고, 그 결과 세계의 비웃음을 사는 '긴급체포'와 '구속영장'의 해프닝이 발생한 것이다.

(한나라당에서 그나마 사이버 공간의 특수성과 자율성에 대한 인식을 가진 유일한 사람은 공성진 최고위원이다. 그는 "이번 수사는 (…) 현실을 잘 인식하지 못한 대응"이라고 비판하며, "사이버 세계가 현실 세계와 병용ㆍ혼융될 수 있는 것을 인정하고 적절하게 제도도 보완해야지만 지나친 과잉대응은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나아가 그는 "21세기 초엽이긴 하지만 지식정보화 시대가 이뤄지면 현실세계와 사이버 세계 사이에 긴장 관계가 발생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해럴드경제 <공성진 "미네르바 수사, 지나친 대응"> 2009.01.12))

사이버 윤리

미네르바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을 게다. 실제로 그는 "온라인에서 작성한 글이 오프라인으로 나올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주관적 소신으로 직접 썼다> 2009.01.12) 서울대의 윤석민 교수는 이를 비판한다. "미네르바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 이렇게 파장이 커질지 몰랐다'고 말했다면 그건 아주 순진한 것이다. 온라인에 글을 쓰는 순간 오프라인의 사회적 파장을 전제하는 것이다." (동아일보 <미네르바구속, 전문가 진단> 2009.01.13) 하지만 "순진한 것"은 죄가 아니고, 온라인 글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확률은 로또 당첨확률과 비슷하다. 로또 하나 샀다고 당첨을 "전제"하고 돈을 쓰는가? (그리고 윤 교수가 아무리 온라인에 글을 올려도 사회적 파장은 아마 못 일으킬 게다.)

사이버 공간의 글을 대하는 적절한 태도는 '판단중지'(epoche)다. 익명으로 올리는 글은 당연히 실명으로 올리는 글보다 책임감이 떨어진다. 하지만 거기서 '그러므로 익명으로 올린 글이 더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네티즌들은 실명으로 올린 글과 익명으로 올린 글에 동일한 크레딧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익명으로 올린 글은 실명으로 올린 글보다 덜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문제는 로이터가 지적했듯이 "경제상황에 대한 부정적 의견들에 대해 점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인 한국 정부의 태도. 그것이 그냥 놔뒀으면 찻잔 속의 태풍이었을 현상을 졸지에 "사회적 파장"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물론 가상이 졸지에 현실이 되는 어느 시점에선가 미네르바에게 윤리적 책임을 물을 여지는 있다. 즉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그가 쓴 글은 이미 가상의 공간에서 나와 졸지에 오프라인에서 사회적 파장이 되어버렸다. 그것을 인지했다면, 늦게라도 자신의 현실적 정체성에 대해 정직하게 해명을 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즉 자신이 연출하고 언론에서 추측하는 것은 그저 사이버 공간의 아바타처럼 가상의 정체성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공고와 전문대를 나와, 독학으로 경제를 공부했고 지금은 집에서 쉬면서 취미로 경제를 분석하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랬다면 일이 훨씬 깔끔할 뻔 했다.

디지털 리터러시

검찰에서는 미네르바의 글에 대해 "인터넷에서 모은 정보를 짜깁기한 것"이라 평가했다. 동아일보는 검찰의 말을 빌려 미네르바가 "인터넷 정보 재가공에 탁월"(동아일보 2009.01.12)하다고 보도했다. 물론 이를 그들은 부정적으로 의미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부정적으로 평가한 그것이 바로 인터넷 글쓰기의 본령이다. 미디어 이론에서는 전자매체 글쓰기의 특성을 '반제품'으로 규정한다. 즉 활자매체의 글쓰기가 독자들에게 완제품으로 제공되어 일방적으로 수용되는 반면, 전자매체의 글쓰기는 언제라도 복제, 인용, 편집, 가공이 가능한 반제품의 상태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네티즌들은 정보를 완성품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사운드든, 이미지든, 텍스트든, 그들은 정보를 반제품의 상태로 다운로드 받은 후, 인용, 수정, 가공, 편집을 통해 그것을 새로운 정보로 조직하여 다시 업로드한다. 사운드의 짜깁기는 리믹스, 이미지의 짜깁기는 합성, 텍스트의 짜깁기는 몽타주라 부른다. 전자적 글쓰기의 격률은 이것이다. "새로움은 요소가 아니라 배치에 있다." 전자시대에 지식은 머리에 내장되는 게 아니라, 하드와 서버에 외장된다.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는 검색술, 정보의 바다를 서핑하는 항해술이다. 이를 '디지털 리터러시'라 부른다.

동아일보 기사의 제목을 보자. "인터넷 재가공에 탁월" 동아일보도 미네르바의 몽타주 능력은 인정한다. 기사에는 이런 언급도 나온다. "박 씨는 일반인들이 잘 찾지 않는 경제 관련 사이트나 블로그를 수시로 드나들며 인용할 만한 문구를 찾은 뒤..." 한 마디로 검색능력도 남다르다는 얘기. "박 씨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모으고 글을 쓰는 일에 취미 이상의 집착을 보였다고 한다." 활자문화의 도서관은 전자문화의 인터넷으로 바뀐지 오래. 기자의 눈에는 도서관에서 정보를 모으고 글을 쓰는 일에 취미이상의 집착을 보이는 사람도 이상해 보일까? 여기서 우리는 검찰과 기자들에게 디지털 마인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박 씨의 글이 생소한 경제용어를 곳곳에 섞어놓은 탓에 전문적인 식견을 갖췄거나, 남들이 모르는 대단한 정보를 갖고 쓴 글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인터넷에 떠다니는 공개정보와 전문가들이 내놓은 전망을 재가공했을 뿐이라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하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공개정보나 전문가가 내놓은 전망이 어디 한둘인가? 네트 위에 홍수처럼 차고 넘치는 게 정보와 전망이다. 그 중 어느 것을 인용하고, 그것을 어떻게 가공하여 어떤 맥락에 배치시키느냐, 그것이 바로 디지털 리터러시의 능력이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정부 여당과 조중동은 왜 그것조차 못했을까? 그게 문제의 핵심이다.

기자의 디지털 문맹을 보여주는 대목이 또 있다. "박 씨에게는 인터넷에서 모은 정보와 남의 글을 짜깁기하는 일이 표절이라는 의식이 없었다." 이 대목에서 뒤로 넘어가는 줄 알았다. 기자가 한탄하는 그 기법은 '패스티쉬'라 하여 이미 문학에서 널리 사용되는 것. 잡지에 실린 먼로의 사진을 베꼈다고 앤디 워홀의 표절을 탓하는 격이다. 인용문의 짜깁기로 이루어진 베냐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오늘날 고전이 되었다. 왜?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를 선취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진중권의 <놀이, 예술, 그리고 상상력>은 의식적으로 그 기법을 사용해 쓴 것이다.

맛보기로 실례를 하나 제시하자면, 위에 이탤릭으로 표기된 부분은 동아일보의 기사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나는 저 구절이 나의 것이라 주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 구절이 들어간 문단은 분명히 나의 것이다. 사실 이 글 전체가 인터넷에서 모은 정보와 남의 글을 짜깁기해 쓴 것이다. 물론 내게도 "인터넷에서 모은 정보와 남의 글을 짜깁기 하는 일이 표절이라는 의식"은 전혀 없다. 왜? 그래도 이 글은 분명히 내 글이니까. 이 글마저 "표절"이라 부른다면, 그것은 한글자모를 사용했다 해서 모든 글을 표절이라 부르는 것과 다름없을 게다.

미네르바를 비판하려면

미네르바를 제대로 비판하려면, 그가 제대로 인용을 했는지, 그가 올바로 짜깁기 했는지, 그리고 그 글을 사회적 맥락에 적절히 배치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그런데 디지털 문맹의 기자에게 과연 그런 능력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미네르바의 예측이 맞았는지 틀렸는지가 아니다. 미래를 알아맞히는 일은 가끔 점쟁이들도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의 예측을 정당화하기 위해 무슨 자료를 인용해서, 그 예측을 무슨 논리적 추론으로 정당화했느냐 하는 것이다.

다른 과학에서도 그렇듯이 경제학의 영역에서도 예측이라는 것은 그저 확률론적 정확성만을 가질 뿐이다. 주사위를 던져 1이 나올 확률은 1/6, 안 나올 확률은 5/6이지만, 가끔은 1/6의 확률도 실현되는 법. 1/6의 확률에 베팅을 하여 맞히면 '용하다'는 소리를 듣겠지만, 그것은 과학적 태도는 아니다.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예측이 적중했느냐가 아니라, 그 예측의 근거가 얼마나 건전한지(sound) 따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네르바의 예측이 몇 개나 맞았는지 채점하는 식의 보도가 내 눈에 한심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조중동에서는 전문가/아마추어의 대립구도를 만들어 놓는 모양이다. 전문적 능력은 존중해야 하나, 타이틀을 맹신할 필요는 없다. "경제학이란 어제 한 예측이 오늘 틀렸다는 것을 내일 확인하는 학문"이라는 말이 있다. 조선일보에서 리먼 브라더스를 인수하자고 했을 때, 그 무모한 용기의 배후에도 소위 전문가라는 이들의 견해가 있었을 것이다. 작년 초 정부에서 환율을 올려야 한다고 했을 때, 그 가공할 근시안도 소위 전문가의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학벌도 아니고, 직위도 아니고, 미네르바의 글이 제대로 근거 잡혔는지 냉정하게 살펴보는 것이다.

이 문제는 애초에 그렇게 처리가 되어야 했다. 미네르바의 예측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가 제시한 근거들을 무너뜨리며, 그 예측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면 그만이다. 이것이 이견을 해결하는 정상적인 방법이며, 민주적인 절차다. 문제는 정부 여당도, 보수언론도 공고와 전문대 출신 백수가 쓴 글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주제가 못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동원한 방법이 고작 '긴급체포'와 '구속영장'. 그 많은 전문가들은 다 어디 가시고, 이 얼마나 해괴하고 한심한 일인가?

물론 정부의 입장이 곤혹스럽긴 했을 게다. 일단, 일개 네티즌과 일국의 부처가 논쟁을 한다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다. 괜히 상대해주었다가는 그의 공신력만 높여주는 꼴이 된다. 게다가 미네르바는 결정적인 순간에 두 번 예측을 적중시켰지만, 정부 여당은 번번이 예측에 실패했다. 그 바람에 보수언론으로부터도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는 평을 듣는 처지. 논리보다 더 강력한 것은 현실이기에, 현실에서 두 번의 적중한 예측을 무기로 가진 상대와 논쟁을 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을 게다.

표현의 자유

미네르바는 영웅도 아니고, 범인도 아니다. 그저 일개 네티즌일 뿐이다. 그는 고학을 통해 한나라당의 이한구 의원으로부터 "대단한 실력파"라 불릴 정도로 경제학 지식을 습득했고, 검찰과 동아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인정하듯이 뛰어난 수준의 디지털 리터러시를 구사한다. 그는 경제상황을 조선일보나 정부 여당과 다르게 보았고, 현실에서는 그의 예측이 올바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이 "멈춘 시계도 하루에 두 번 맞는다"는 속담으로 표현해야 할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제대로 된 인용과 추론을 통해 이루어진 과학적 적중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쨌든 적중한 예측은 정부 여당과 보수언론의 무지와 무능과 현격한 대비를 이루면서, 그는 졸지에 인터넷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차라리 멈춘 시계라면 하루에 두 번이라도 맞지, 한 번도 맞지 않는 강만수와 조중동의 불량시계는 도대체 어느 나라 제품이란 말인가.) 그에게 열광하는 팬들을 나무랄 필요는 없다. 신드롬은 인터넷의 일상이니까. 인터넷에는 허경영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있고, 전두환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전여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심지어 이명박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네르바가 졸지에 인터넷 대통령으로 불리자, 정부 여당에서는 그를 체포했다. 거기에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하나는 경제에 대한 불안이 아고라를 통해 결집해 '제2의 촛불'로 번지는 것을 사전에 막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네르바를 범죄자로 만들어 놓고 이를 빌미로 인터넷을 옥죄는 법률을 통과시키는 계기로 삼는 것이다. 그 체포가 '긴급'하게 이루어진 것은, 지하벙커 상황실 해프닝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정부여당이 지금 심리적 패닉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지난 1년을 허비하고, 제대로 통치할 기간이라고는 1년 밖에 안 남았잖은가.

미네르바가 올린 글이 대부분이 허위였다면, 혹은 그의 예측이 대부분 틀렸다면 차라리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올린 글 중에서 허위 사실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고, 그의 예측은 상당 부분이 맞아 들어갔다. 그가 한국의 경제를 망가뜨릴 악의를 갖고 글을 썼다면, 차라리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전망과 정책에 불안감을 느낀 네티즌들은 미네르바에게서 '한국 경제를 살릴 선의'(인터넷 경제 대통령)를 보았다. 바로 그 때문에 그는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바로 그 때문에 체포되고 구속된 것이다. 이 얼마나 황당한 역설인가.

미네르바는 일개 네티즌일 뿐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는 그에게도 보장되어야 한다.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는 없다"고? 누가 인터넷에서 무한한 자유를 누리겠다고 하는가. 그저 경제를 부정적으로 전망해도 체포되지 않을 자유, 내가 옳다고 믿는 바를 말해도 구속되지 않을 자유, 내가 쓴 글이 네티즌들의 폭발적 반응을 받았다고 국사범으로 몰리지 않을 자유, 내가 사이버 공간에서 또 다른 정체성을 갖는다고 파렴치범으로 몰리지 않을 자유. 이것은 "무한한 자유"가 아니라, 전 세계 민주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우리만 못 누리는 '최소한의 자유'다.

미네르바를 석방하라. 이렇게 말하면,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의 모자라는 기자들-놀랍게도 대학을 나왔다고 한다-은 진중권이 또 다시 미네르바 거품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거품은 자기들 입에 물고 있는 그것이지. 거품을 부풀리건, 가라앉히건, 그건 이해가 걸린 사람들끼리 하시라. 내 유일한 관심은 미네르바라는 한 개인의 권리. 일개 네티즌을 검찰이 체포하고, 법원이 구속하고, 거대언론들 떼를 지어 사정없이 물어뜯는다. 이 잔인한 카니발리즘. 대체 뭣들 하는 짓인가? 근데 조영남까지 나서서 그 짓을 응원한다. 철딱서니하고는….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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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해 2009.01.12 1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네르바가 우리나라 외환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그리 대단한 놈인가요?

    미네르바가 달러 사라는 한마디에 국고외환 20억불이 더 소요됐다고...
    그럼 미네르바가 달러 팔라고 두마디 하면 국고로 외환 40억불이 들어오겠군.
    미네르바 심기 편하게 잘 모셔야겠군요.

  2. 역쉬진형 2009.01.12 2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형님이 계셔서 이렇게 정리를 잘 해주십니다.

오늘 오마이뉴스에 손호철과 진중권을 비판하는 김갑수의 글이 올라왔다. 글의 제목은 '대연합 반대' 손호철·진중권, 대안이 뭔가'이다.

그의 말대로 그래도 민생민주연합에 희망을 걸고 싶다. 또한 대연합의 의미를 의도적으로 과소평가하는 것은 유익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대연합 결성이 시의적절한지, 국민의 여망을 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김갑수는 "대연합에 거는 국민의 기대와 호응은 과거 독재 시절만큼 열렬하지는 않"는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라는 선명한 이슈가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당시 김영삼·김대중 같은 걸출한 정치 스타가 없기 때문이"란다. "따라서 민생민주연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슈와 인물, 이 두 가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라는 선명한 이슈가 없고 정치지도자가 없다는데, 없는 열망을 왜 굳이 만들어내려는지도 이해가지 않고, 이미 지도자로서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한 이들에게 왜 미련을 갖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또한 대연합은 민생과 민주와 민족, 이 3대 의제를 설정해야 한다고 한다. 이 단어를 조합하면 민족민주민생연대로 불릴 것 같고, 앞 글자만 따서 삼민연대라 부르면 되겠다. 참으로 구닥다리이다. 그가 주장하는 대연합의 이슈는  첫째, '민생' 의제의 실천방안으로 한미FTA반대이고, 둘째가 '민주'의제의 실천방안으로 촛불구속자 석방이고, 셋째가 '민족'의제를 이슈화하기 위해서 국가보안법 철폐라고 한다.

당연히 한미FTA를 반대해야겠지만 과연 지금 민생현안이 한미FTA반대인가? 외환위기보다 더 심할 것으로 보이는 경제난에 대한 대책이야말로 국민들이 원하는 민생대책이 아닌가? 한미FTA반대만 하면 경제위기가 사라지는가? 참으로 편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다.

촛불 구속자들에 대해서도 당연히 석방을 이뤄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 투쟁의 빌미나 명분을 만들기위해서 주장한 구속자 석방주장 방식이어야 하는가? 촛불에서 배운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고작 상상력이 그 정도이니 말이다.

그리고 '민족' 의제를 이슈화하기 위해서는 아예 국가보안법 철폐를 들고 나와야 한다고 한다. 대북 정책의 원천적인 문제를 이슈화하여 여론을 얻자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2004년 하지도 못할 4대개혁입법을 들고 나와서 정국을 시끄럽게하고 결국 불신만 자초한 국가보안법투쟁을 또 하자고 제기한다. 도대체 반성도 안하고 현실감각도 없다.


곰곰히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민생민주연대를 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그리고 굳이 냉소적으로 볼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 민생민주연대가 국민들이 가장 고통받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는가?
심화되는 경제난을 극복할 대안-그 대안이란 서민들의 희생이 아니라 경제주체가 공정하게 부담하는-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물론 대연합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말 그대로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진중권의 표현처럼 '빈부격차의 폭을 줄이고, 서민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중산층의 층을 두텁게 하고, 삶의 안정성을 제고하고, 나아가 한국경제 전체를 진정으로 선진화하는 길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서서 구체적이고 현실적합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대연합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사안별 연대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므로, 연대를 통해 신뢰의 기반을 확장해가야 한다. 일단 대연합을 만들면 뭔가 될 것이라는 착각은 이젠 그만 했으면 좋겠다.

반MB민주연합이든 반신자유주의연합이든 그것이 과정과 결과로서 도출되어야지 선언으로서 시작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Posted by 별이빛나는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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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리장 2008.12.05 20: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민주당 참여문제로 소란스러울 때부터 이 연대는 한시적이고 낮은 수준이라고 못을 박아서 결과도 그리 기대할 것이 못됩니다. 연말에 집회나 기자회견 한두개 하고 말 듯...

진중권이 진보신당 게시판에
반MB연대에 대한 비판의 글을 올렸다.

진중권이 맞다.

MB의 집권은
민주화이후 서민들의 삶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경제상황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경제지표는 좋아지지 않았냐고 반박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도 그렇지 않거니와
실재로도 그렇다.

이와 관련해서 내가 블로그에 쓴 글도 있다.(시대착오적인 사람들)
김종배의 명쾌한 비판글은 더욱 읽어볼만 하다(김종배의 글 보기)
진중권의 글 전체를 보려면 여기를 클릭.

민주당-민주노동당의 반MB 연대에 대한 단상
진중권, 2008-11-29 06:37:31 (코멘트: 17개, 조회수: 1138번)

(앞부분 생략)
지난 대선에서 보수의 득세는 '민주, 통일'이라는 80년대 의제에 안주하다가, '배가 고프다'는 서민들의 절실한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사이에 MB가 경제대통령의 허상을 안고 거의 무주공산을 차지하듯이 들어와버린 현상으로 볼 수 있지요. 지난 정권 10년 사이에 빈부격차가 늘어나고, 중산층이 줄어들고, 삶의 안정성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장 중요한 원인에 대한 반성이 없이 또 다시 그 밥과 그 나물을 모아 비빔밥을 만든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그런 기대는 나중에 또 다시 참담한 심정으로 꺼지는 것을 지켜보게 될 허상에 불과합니다. 당장 지지율을 좀 올리니 마니, 하는 차원에서 얘기해야 할 게 아닙니다. 뭔가 근본적인 수술이 있어야 합니다.

MB가 워낙 꼴통이라 그나마 10년간 이룩해온 '민주, 통일'의 업적마저 무화시키니, 다시 저런 의제로 연대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한나라당이 MB의 가공할 실정 속에서도 비교적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제기되는 '민주, 통일'의 의제보다는 여전히 장기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제 문제가 주요한 정치적 선택의 준거로 작동하기 때문일 것입니다.후자를 건드리지 않고, 전자만을 갖고 하는 연대는 허깨비일 뿐입니다. 파괴력도 없구요. 한나라당에 대한 기대는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대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안 없는 연대라니요...
(뒷부분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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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게시판에서 퍼왔습니다.


나를 실망시킨 검찰
진중권, 2008-07-29 22:05:09 (코멘트: 20개, 조회수: 613번)

 

<프레시안> 기자로부터 검찰 발표문에 내가 이 게시판에 올린 글이 인용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한민국 검찰로부터 공신력을 인정받았으니, 그 신뢰에 힘입어 이번 검찰의 발표에 대한 평을 남겨야겠다. 검찰이 인용한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나는 <PD수첩> 측의 해명뿐 아니라 검찰의 주장도 함께 들어봐야 객관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제 검찰이 들고 있던 카드를 내왔으니, 이제 새로이 관전평을 해야 할 것 같다. 미리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내가 그토록 믿고 기대했던 검찰이 나를 너무나 실망시켰다.

그래도 ‘뭔가 있으니 그러는 게 아니겠는가’ 추측했는데, 발표문의 주요 내용을 아무리 찾아봐도 새로운 얘기가 없다. 그 동안 검찰이 언론 플레이를 통해 여기저기 흘렸던 얘기들의 종합판일 뿐. 심지어 내가 이 게시판에서 사적으로 나눈 대화 글까지 떼다가 수사결과에 실어 놨다. 나는 그래도 검찰의 수사에 성과가 있기를 기대했는데, 검찰이 한 일이 고작 검찰에 기대하는 진중권의 말에 기대는 것이라니. 이런 개그가 또 있을까? 그것도 떡밥이라고, 검찰이 달려들어 덥석 물 줄은 몰랐다. 그 말 듣고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검찰의 전략은 내가 판단하기에 가랑비로 옷 적시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디테일의 개수를 늘린다고 대마를 잡을 수 있겠는가? 140쪽이나 된다는 그 질의서는 나에게 양적인 인상을 주지만, 정작 내가 검찰에 기대했던 질적 인상을 주는 데에는 실패했다. 여기서는 검찰의 발표와 그 동안 보수언론의 보도에서 당장 눈에 띄는 논리적 무리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그 전에 일단 가장 근본적인 사실부터 확인해 두어야겠다. 그것은 가장 본질적인 문제, <PD수첩>의 보도의 취지가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PD수첩>의 취재의도는, 미국산 쇠고기 협정과 관련하여 한국정부의 위기관리(risk management)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 짚어보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광우병 환자 한, 두 명이 발생해도 수입을 중단할 수 없다’는 민동석 차관의 발언은 사태의 본질을 충격적으로 보여 준다. 방송의 결과, 쇠고기 협정이 졸속으로 체결된 것이 드러났고, 그 때문에 대통령이 두 번에 걸쳐 대국민 사과를 했고, 부랴부랴 추가협상이 이루어졌으며, “90점”이라는 정부가 매긴 점수만큼 국민들이 광우병의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더 안전해졌다. 이것이 <PD수첩>이 발휘한 사회적 공로다.

핵심적인 논점은 ‘왜 다른 여러 가지 가능성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의 가능성만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다시 두 가지 하위 논점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아레사 빈슨의 병명에 관한 논란이고, 다른 하나는 다우너 소의 증상에 관한 논란이다. ‘단정’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사용하는데, PD수첩은 아레사 빈슨의 병명에 관해서도, 다우너 소의 증상에 관해서도 단정을 한 바 없다. 빈슨의 병명은 ‘부검결과가 나와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것이고, 다우너에 관해서도 ‘물론 저 소들이 다 광우병에 걸렸다고 볼 수는 없다’는 멘트가 나온다.

‘단정적’이라는 말은 이보다 좀 누그러진 표현이다. 의역과 오역의 문제는 주로 이 부분에 집중된다. ‘단정했다’는 동사는 가부를 명확히 가릴 수 있는 문제. 하지만 ‘단정적’이라는 형용사는 사실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언표의 뉘앙스를 강화하거나 약화시키는 데에 사용되는 수사학에 관련된 술어일 뿐이다. 방송에서 단정을 한 적이 없고, 명시적으로 아레사 빈슨의 병명이 확정되지 않았고(그것은 논리적으로 CJD와 vCJD일 가능성을 모두 허용한다), 다우너소가 모두 광우병소인 것은 아니라는 멘트가 나간 이상, 결국 뉘앙스의 강약을 문제 삼아 물고 늘어지겠다는 얘긴데, 이는 논리적으로 별 가망이 없어 보인다.

아레사 빈슨의 병명과 다우너소의 증상에 관해 다양한 가능성이 있는데, 그중 왜 광우병만 부각시켰느냐 하는 것. 검찰이 범하고 있는 가장 큰 논리적 무리도 이것과 관련이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아레사 빈슨이 걸렸을 수도 있을 병명들, 다우너 증세를 일으킬 수 있는 다양한 질병들 중에서 당장 현안이 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이 있는(relevant) 것이 바로 광우병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검찰에게 이 상식적 사실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나를 놀라게 한다.

<PD수첩>의 보도는 ‘아레사 빈슨의 병명이 무엇인가’에 관한 방송이 아니었다. 만약 아레사 빈슨의 진단명에 관한 방송이었다면, CJD나 vCJD 중에서 아무래도 확률이 높은 CJD쪽을 더 많은 비중으로 다루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CJD가 도대체 PD수첩에서 문제 삼은 미국산 쇠고기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미국의 언론도, 국내의 언론도, 심지어 정부 당국자도 아레사 빈슨이 인간 광우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는데, PD 수첩에서 그 가능성을 언급하면 안 되는가? 더욱이 미국산 쇠고기가 문제가 되는 이상, 이 사안과 관련된 의심을 강하게 부각시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다우너 소의 증상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PD수첩>의 보도는 ‘다우너 증상을 일으키는 질병은 무엇인가’에 관한 방송이 아니었다. 다우너 증상을 일으키는 병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하여 한국의 소비자가 가장 우려하는 가능성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광우병에 걸렸을 위험이다. 그런데 광우병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다우너까지 식품으로 제공될 수 있다는 사실은 미국의 도축 시스템에 문제가 있을 의미한다. 최근 미국에서도 문제를 인정하고 새로이 다우너의 도축을 금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문제의 영상이 원래 ‘동물학대’에 관한 것이었다는 지적도 썰렁하긴 마찬가지다. 살인사건이 담긴 화면이 원래 교통 카메라에 찍힌 것이었다고 그게 증거로 인정이 안 되는가? 미국에서 그 영상이 일으킨 커다란 사회적 패닉도 학대당하는 동물에 대한 연민이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 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하여, 문제가 되는 논점은 하나다. ‘아무리 작은 확률이라도 수입되는 쇠고기 중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섞여 있을 가능성은 없는가.’ 제대로 된 방송이라면, 당연히 그 가능성을 끝까지 추적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PD수첩에서 한 일이다.

검찰의 인식에는 방송의 취지가 무엇이었는지 대한 고려가 전혀 없어 보인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PD수첩>의 주제는 ‘아레사 빈슨의 병명이 무엇이었느냐’, ‘다우너 증세를 낳는 질병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아니었다. PD수첩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 먹어야 하는 한국의 소비자 입장에서 꼭 짚어봐야 할 가능한 위험성에 관한 방송이었다. 그런 취지를 가진 방송에 대고 ‘왜 광우병의 위험만 일방적으로 강조했느냐’고 타박하는 것은 한 마디로 토끼 보고 넌 왜 고기 안 먹고 풀만 먹냐고 따지는 맹구 같은 논리가 아닐 수 없다.

또 문제는 <PD수첩>이라는 프로그램의 성격에 관한 몰이해다. <PD수첩>과 같은 방송은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뉴스와 달리 적극적으로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의제를 설정하기 위한 방송이다. 그런 방송은 문제의식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당연히 방향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 방향성을 쫓아가는 과정에서 수사적 과장이 지나쳤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방송 전체를 놓고 볼 때, 그것은 그저 미용의 실수(Schönheitsfehler)의 수준을 넘지 않는다. 이번 발표에서 너무나 축어적인 아레사 어머니의 인터뷰를 뒤집을 만한 실체적 증거가 나올 거라 기대했는데, 실망스럽게도 새로운 게 없다.

그 동안 검찰이 했던 얘기 중에서 그나마 내가 기대했던 것은 MRI 결과를 설명하는 영상에 관한 부분이다. 이번 발표에서 검찰이 뭔가 증거를 내놓을 줄 알았는데, 결국 그 부분은 그냥 추측으로 남을 모양이다. 추측을 수사결과라고 발표하는 것의 적절성에 대한 얘기와는 별도로, 검찰에 걸었던 내 기대가 허무하게 좌절된 허탈감은 어쩌란 말인가? 나는 검찰에서 뭔가 카드를 갖고 있기에 그런 얘기를 흘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카드를 까고 보니, 그냥 그것은 추정일 뿐이고, 그 추측이 틀린다면 네가 스스로 해명하라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취재 원본을 공개하라’는 주장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취재 원본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도 ‘언론자유의 문제’다. 인터뷰가 언제라도 검찰의 손에 들어갈 수 있다면, 누가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하려 들겠는가? 이제까지 선례도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해놓고 상대방이 안 받아들이면, ‘뭔가 캥기는 게 있어 그러는 게 아니냐’고 받아치겠다는 얘기인가? 자신들이 지난 한 달 간 했던 검찰의 수사 자료의 원본도 공개를 하고, 수사가 얼마나 객관적이고 공정했는지 검증을 받아보는 건 어떨까? 캥기는 게 없다면, 공개 못할 일도 없지 않은가. 이 얼마나 썰렁한 얘기인가.

보도를 보니, 정부에서 해외공관에 정부가 언론사를 고소 고발한 사례를 조사해 바치라고 요구했단다. 그런데 불행히도 해외에서 그런 사례를 단 한 건도 찾지 못했단다. 다만 미국에 한 가지 판례가 있는데, 거기에 따르면 ‘실제적 악의(actual malice)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설령 보도 내용이 일부 틀렸다 해도 명예훼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과연 ‘PD수첩이 정운천 장관이나 민동석 차관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실제적 악의를 가지고 방송을 했다’는 추정이 상식적으로 얼마나 개연적(plausibel)일까?

해외공관에서 취득한 첩보의 결과 정부에서도 이 공방이 법정으로 가면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겨우 수사의뢰라는 편법을 동원했을 것이다. 내가 이 사태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조리가 한 가지 있다. 지금 대한민국 검찰이 도대체 뭐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검찰은 어떤 알 수 없는 이유에서 국제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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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가 잘 되어있는 것 같아서 ....
아래는 PD수첩 게시판에 쓴 진중권의 "검찰 꼬리 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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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비프리박 2008.07.16 21: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차피 되지도 않는 일을 시작한 것이 뻘짓이었지요.

    트랙백 보냅니다.

진보신당게시판에서 퍼왔습니다.
논점1. http://newjinbo.org/board/view.php?id=discussion&page=3&no=14298
논점2. http://newjinbo.org/board/view.php?id=discussion&page=3&no=14301


앞으로 더 많은 것이 밝혀져야겠지만, 일단 PD수첩을 보고, 또 거기에 대한 조중동의 기사를 보면서 현재 스코어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방송에서 크게 두 개의 논점이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논점 1: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의 병명을 CJD로 알고 있었으며, 이를 분명히 vCJD와 구별하고 있었다. 따라서 PD수첩의 보도는 왜곡이다.

"이어서 PD수첩은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 로빈 빈슨 발언의 진실 여부를 둘러싼 의혹을 규명할 미국 버지니아주 WVEC-TV의 뉴스 동영상 자료를 공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빈슨의 어머니는 "우리 딸은 vCJD(인간광우병)의 가능성이 있었는데 이는 알다시피 일반 CJD(크로이츠펠츠야곱 병)와는 달랐어요"라는 발언을 했다. 그는 또 "보건 당국과 의사가 말하길 vCJD에 걸렸다면 이는 매우 드문 경우이고 지금까지 3명이 걸렸다고 했어요"라고 덧붙였다. 이 발언은 "빈슨의 어머니가 미국 언론에서는 vCJD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고, 이 이 단어 발언을 유도해 짜맞추기식으로 보도했다"는 의혹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한국일보)

방송을 보니 아레사의 어머니는 분명히 자기 입으로 자기 딸이 걸린 것이 vCJD이며, 이는 일반 CJD와 다르다고 말합니다. 당시 상황에서 아레사의 어머니는 딸이 vCJD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믿었다는 얘기죠. 이로써 정지민씨의 가장 큰 주장은 무너져 버립니다. 그동안 그녀는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가 CJD와 vCJD를 구별하지 못했다는 PD수첩의 해명은 거짓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과연 그녀의 말대로 아레사의 어머니는 양자를 분명히 구별하더군요. 그런데 자신의 딸이 걸렸다고 의심받는 병은 vCJD라고 단언합니다. 한 마디로 정지민씨가 회심에 차서 날린 골이 외려 자살골이 되어버린 격이지요. (이게 문맥을 파악하는 능력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원본 없이 기억에만 의존하다 보니 그런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정지민씨는 이것이 '아레사의 어머니가 vCJD와 CJD를 혼동해 사용했다'는 PD수첩의 애초의 주장을 반박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궁색한 트집, 한 마디로 논점일탈의 오류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인터뷰는 축어적으로 분명합니다. 이렇게 확실한 인터뷰 동영상을 갖고 있음에도 PD수첩에서 아레사의 어머니가 vCJD와 CJD를 구별하지 못했다고 추측한 것은, 그녀가 이 둘의 개념적 차이를 구별하지 못했다는 의미보다는, 당시에 아레사의 어머니가 자신의 딸이 걸렸다고 의심되는 병이 vCJD인지, 그냥 CJD인지 확실히 알지 못했다는 의미겠지요. 실제로 정지민씨가 자신의 글에 링크시켜 놓은 미국 신문의 기사에도 "의사들은 그녀가 vCJD, 혹은 CJD에 걸렸을지 모른다고 믿는다"고 나와 있네요. 

정지민씨는 새로이 아레사의 주치의가 '동네의사'에 불과하다고 인신공격에 가까운 논변을 구사합니다.  하지만 정지민씨 자신이  링크해 놓은 기사의 본문을 보면, 의사'들'이라고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의사들은 아레사가 vCJD 혹은 CJD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믿는다." 여기서 말하는 의사들이 죄다 동네의사들이라고 믿어야 할까요? 기자가 다이어트 충고나 해주는 동네 의사들에게 물어본 견해를 말하는 걸까요? 따라서 아레사에게 인간광우병을 의심한 의사를 동네의사라 부르며 그가 광우병 전문가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정지민씨의 때늦은 해명은 솔직히 많이 궁색하게 들립니다.

정지민씨의 논리는 이런 겁니다. 아레사의 사인은 vCJD보다 CJD였을 가능성이 더 컸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대단한 진리가 아니라 의학의 상식입니다. CJD 환자는 수백 건에, vCJD 환자는 두 세 건. 이거 모르는 사람 있나요? 그런데 하나마나한 얘기로부터 '따라서 방송은 확률이 더 큰 CJD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켰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나요?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건 어처구니 없는 논리의 비약이 될 겁니다. 문제의 방송은 '아레사 빈슨'이라는 인물이 아니라, 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관한 프로그램입니다. 그러니 쇠고기와 관련이 있는 질병의 가능성을 부각시키는 게 당연하죠. (CJD 자체도 쇠고기와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는 새로운 과학적 주장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지요.)

번역자 정지민씨 자신은 사실 동네의사만도 못한 의학지식을 갖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녀가 제기하는 논점들은 모두 사태에 대한 대단히 강한 의학적 해석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녀가 홈페이지에 제시한 자료들을 다 읽어봐도, 아레사 빈슨이 당시에 걸렸다고 의심되는 병은 vCJD, 아니면 CJD라는 것뿐입니다. 이중에서 vCJD의 가능성을 배척할 근거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방송에서 아레사가 걸렸다고 의심받은 그 병은  CJD임을 강조했어야 한다고 말하네요. 하지만 그건 그녀의 주관적 해석일 뿐, 누구나 그렇게 해석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그녀는 PD가 아니라 여러 번역자 중의 한 사람, 그녀가 모든 문헌과 영상 자료를 다 본 것은 아니라는 점도 판단을 할 때 주요하게 고려해야겠지요.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자기처럼 해석하지 않는다고 검찰에 자료 내놓고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거기에는 솔직히 소름이 오싹 끼치네요. PD수첩에서 자막을 그렇게 내보낸 것은 번역자의 책임이 아닐 겁니다. 그 얘기를 하려다가 너무 멀리 나간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조중동에서는 수십 개의 기사를 쏟아내면서 미국으로 전화 한 통 안 넣고, 오로지 스물 여섯 먹은 번역자 한 사람에게만 의존했다고 하네요. 마지막으로 서울신문 기사입니다.

"이날 ‘PD수첩’ 해명방송이 끝난 뒤, 본지는 이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그동안 오역 논란을 제기해온 지난 4월 방송의 일부 영어자료 번역자 정지민씨에게 통화를 시도했으나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2. 두 번째 논점


사실 피디수첩이 지금 비난 받는 건 번역상의 문제라고 보기 힘듭니다.
vCJD이니 CJD이니 이것도..사실 전 피디수첩팀의 해명은 정당하다고 봐요. 죽은 여자분 어머니가 계속 혼동해서 말하면서도, 결국은 인간광우병으로 의심하고 있었고요. 근데 다우너 소 문제는 번역 문제가 아니죠.


이미 피디수첩 시청자 게시판에 번역자 정지민씨가 지난 6월 25일에 이렇게 실토했네요. 결국 다우너 소 동영상의 문제라는 얘기인데, 글쎄요, 그것도 결국 헛발질로 끝날 것 같네요.

왜냐하면

1. 그 동영상이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상관 없이, 중요한 것은 다우너가 여전히 도축되어 식품으로 팔려나간다는 사실이니까요. 예를 들어 살인사건이 찍힌 카메라가 원래 교통 카메라였다고 해서, 그걸 증거물로 내놓는 게 왜곡보도가 되나요? 마찬가지로, 원래 동물학대를 고발하기 위해 찍은 영상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 사안에 관계된(relevant) 것이 담겨 있으면, 원래 목적과 상관없이 그 영상은 제대로 사용된 것입니다.

2. 그 동영상 때문에 대규모 리콜 사태가 났었지요. 그런데 그 리콜이 어디 학대 당해 죽은 동물의 고기라서 먹을 수 없다는 인도적, 혹은 동물애호적인 이유에서 이루어졌나요? 그것은 분명히 광우병을 포함해 질병 감염의 우려가 있는 쇠고기였기 때문이었지요. 그렇다면 그 리콜도 왜곡 리콜이었다고 불러야 할까요?  이것만 봐도 정지민씨의 논리가 얼마나 코미디인지 알 수 있지요.
 

3. PD수첩이 이미 지적했듯이, 당시 리콜 사태가 났을 때 조중동 역시 그것을 광우병과 연관시켜 보도한 바 있습니다. 먼저 조선일보 기사를 보죠. 조선일보에서는 자기들 것은 한겨레신문의 보도를 인용했을 뿐이라고 변명하던데, 다음 기사는 조선일보 특파원이 직접 작성한 겁니다. 보시죠.

(1) 조선일보

"이번 리콜 대상은 웨스트랜드가 2006년 2월 1일 이후 캘리포니아 주 치노의 도축장에서 생산한 쇠고기이다. 미 농무부는 다우너 소의 경우 대·소변 속에서 버둥거리면서 면역체계가 약해지기 때문에 식중독균이나 광우병 등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아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뉴욕=김기훈특파원)

(2) 동아일보

농무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대받은 소들은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는 병에 걸린 ‘다우너(downer) 소’들이었다. 규정상 다우너 소는 식품으로 사용될 수 없다. 광우병에 감염될 위험성이 일반 소보다 높기 때문이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3) 중앙일보

 ◇재검사 규정 무시=미국 규정에 따르면 모든 소는 도축되기 전 검역요원의 건강진단을 받아야 한다. 이때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는 이른바 ‘다우너(downer)’ 소들이 발견되면 폐기 처분하는 게 원칙이다. 광우병, E콜라이 대장균, 살모넬라균 등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검사 후에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즉각 재검사해야 한다. 그러나 이 회사 직원들은 규정을 무시한 채 병든 소들을 강제로 도축장에 끌고 갔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4.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번 인터뷰에서 동영상을 직접 제작한 측에서 그 동영상의 목적이 동물학대만이 아니라, 그것이 식품으로 소비됐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데에도 있었다고 직접 확인을 해주었네요. 그러니 어쩌죠? 외려 문제를 제기한 정지민씨와 조중동의 주장이야말로 왜곡된 사실에 기초해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니 말이죠. 게다가 미국으로 전화 한 통 넣으면 될 문제를, 전화비가 아까워서 번역자에게 의존합니까?


자, 여기에 조중동과, 그들의 유일한 취재원인 "부분 번역자" 정지민씨는 뭐라고 대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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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게시판에서 퍼왔습니다.

금강산 민간인 피격
진중권, 2008-07-11 22:51:10 (코멘트: 18개, 조회수: 504번)

MB가 사건의 발생을 인지하고도 국회에서는 대북 대화를 제의했다고 하네요. 이런 일이 터졌는데도 한나라당과 뉴라이트가 잠잠한 게 재미있네요. 이 정도라면 인터넷의 수구좀비들이 아우성을 치고, 우익단체들은  길바닥으로 쏟아져 나와 가스통에 불 붙이며 데모할 사안인데 말이죠. 더 재미있는 것은 이른바 진보진영의 태도입니다. 그런 불행한 사태에도 불구하고 대북 대화 제안을 한 대통령의 발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나섰으니 말이죠.

물론 남한의 군부대에도 "접그하면 발포함"이라는 무시무시한 문구가 적혀 있지요. 북한과 같은 경직된 사회에서는 아마 더 살벌할 겁니다. 희생자가 군통제지역으로 들어간 게 사실이라면, 아마 그 북한군 병사는 규정대로 행동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고려한다 하더라도,  비무장 민간인의 뒤를 향해 총을 발사한 것은 과잉대응으로 보입니다. 그 상황에서 과연 발포가 유일한 선택이었을까요? 50 넘은 아주머니가 도망가면 얼마나 가겠다고.... 당의 논평에는 이런 부분에 대한 지적이 들어갔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정도는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항의가 아닐까요?

황당한 것은, 이런 현실적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미리 대책을 세우지 못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현대측에서는 물론 구두로 위험을 경고했다고 하나, 그걸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가령 정말로 민간인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군사지역이라면, 그 길목에 철조망, 바리케이트, 경고판 등을 설치해 놓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산책을 하다가 어떻게 발포가 가능한 위험한 지역으로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들어갈 수가 있었는지...

MB가 이런 엄청난 사건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cool한 태도를 보인 데에는 이유가 있지요. 그 동안 전 정권의 대북정책을 '퍼주기'라 비난하다가, 결국 통미봉남의 덫에 걸려버렸습니다. 북한에 대해 강경발언을 쏟아놓다가 북미 사이에 이미 싱가포르 협정이 맺어진 사실을 알고 방문 중이던 미국에서 부랴부랴  남북연락사무소 개설이라는 획기적(?) 제안을 해야 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최근에는 옥수수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북한게 멋지게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요.

통미봉남에 걸릴 경우 6자회담에서 남한의 역할은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이 경우, 지난 YS 정권 때처럼 협의는 남들이 다 하고 비용만 덤터기 쓰게 되지요. 요 몇 달 간 MB는 남북관계를 '실용'이 아니라 '이념'의 관점에서 접근하다가 큰 코를 다친 바 있습니다. 한 마디로 본전도 못 차리고 볍진이 되어 버린 거죠. 그래서 부랴부랴 6.15와 10.4를 인정하는 어법을 구사하며 북한에 구애를 할 수 밖에 없게 된 거죠. 그런데 하필 이때에 피격 사건이 터져 버린 겁니다.

만약에 MB가 이제까지 늘 했던 대로 북한에 대해 강경대응을 할 경우, 그러잖아도 자신이 꽁꽁 얼려버린 남북관계는 영원히 경색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MB가 혈맹이라는 믿는 부시는 야속하게도 이 대북 강경책에 동참해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시는 임기가 끝나기 전에 북핵을 비롯한 여러 문제를 매듭져야 하니까요. 그러니 MB에게는 다른 길이 안 보이는 거죠. 금강산에서 제 나라 국민이 피격을 당해도, 목소리 한번 크게 못 낼 수밖에 없는 겁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그게 합리적 태도이긴 합니다. 남북한 사이에 이런 돌발사태는 언제라도 터져나올 수 있고, 그럴 때마다 정색을 하고 강경대응을 했다가는 도대체 관계라는 것을 안정화시켜 나갈 수 없을 테니까요. 그 때문에 MB가 통미봉남의 덫에 걸려 어쩔 수 없이 보이는 유화적인 태도를, 이른바 진보진영에서는 "진일보"(한겨레)한 것이라 평가하는, 평소에는 참으로 보기 힘든 진풍경이 벌어지는 거죠. 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있네요.

제 생각에는, 아무리 궁지에 몰렸어도 제 나라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진 정부라면, 저것보다는 어조를 좀 더 강하게 가져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동안 강경한 어조르 쓸 데 없이 북한을 자극한  MB 정권의 원죄가, 그들의 강경한 보수색채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런 문제에 대해 찍소리를 못하고 입을 다물게 하고 있는 거, 그게 현상황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이를 서해교전 당시 한나라당과 보수우익의 태도와 한번 비교해 보세요.

쇠고기 문제로 미국에게 봉이 되고, 독도 문제로 일본에게 봉되고, 한미동맹 문제로 중국에게 봉 되고, 그러다가 마침내 북한 앞에서까지 봉이 되어버리고 만 MB 정권의 탁월한 외교력에 경외심이 생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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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A2 2008.07.12 0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살벌하게 해놔서 걱정됩니다.
    그동안 많이 살살 달래놨는데 뿔나게 만들었으니.
    정작 전쟁나면 수구좀비들은 죄다 도망갈꺼면서 빨갱이 타령하고 있는거 보면 웃깁니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쫄고.

진보신당 게시판에서 퍼왔습니다.

촛불집회에 관한 단상
진중권, 2008-07-07 15:53:25 (코멘트: 21개, 조회수: 522번)

이제까지는 현장 리포터로 상황을 따라가는 데에 주력했기에, 몰려드는 모든 방송, 신문, 잡지 인터뷰들을 다 끊고 견해 표명을 삼가왔습니다. 사실 저는 리포터에 불과하고, 촛불집회는 대중의 반란이자 축제이기 때문에 제가 이리로 가자, 저리로 가자 훈수를 두는 게 주제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개인이 촛불정국에서 필요이상으로 부각되는 데에 대한 우려도 있었구요. 이제는 리포터이자 동시에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참가자의 입장에서 조심스레 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될 때인 것 같습니다.

1.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관해서 말하자면, 수입이 일단 재개됐기 때문에 재협상을 요구하는 집회와 별도로  일상적 투쟁을 조직할 필요가 있습니다. 곧이 제 돈 내고 미국산 쇠고기를 먹겠다는 사람들을 말릴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선택 또한 존중받아야 하니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원하지 않는데도 미국산 쇠고기를 먹게 되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일 겁니다. 말하자면 쇠고기를 사먹을 때, 미국산 쇠고기인줄 모르고 사먹거나, 미국산 쇠고기로 속아서 사먹는 일을 막는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정부가 내다버린 소비자의 선택권을 시민들이 스스로 확보하는 과제지요.

송기호 변호사가 주장한 것처럼 국내산 한우의 전수검사의 도입과 같은 의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소비자 운동의 관점에서는, 비록 쇠고기를 적게 먹더라도 질 좋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먹는 쪽으로 발상의 전환을 일으키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어차피 값싼 미국산 쇠고기 먹을 사람들은 대부분 돈 없는 서민일 것입니다. 하지만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에서 안전하지 않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인격과 인권의 문제입니다. '배부른 소리 한다'는 천박한 생각을 넘어, 식생활의 생태적 전환은 서민의 당당한 권리에 속한다는 인식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생산자 운동의 관점에서는 몰려드는 미국산 쇠고기에 맞서 한국 축산업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정책적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정당과 시민단체에 속한 전문가들이 맡아줘야겠지요. 식량이 자원화, 무기화되는 상황에서 선진국들은 식량자급률을 계속 높여나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값싸지만 그다지 안전하지 못한 외국산 농축산물의 공세에 한국의 농업은 몰락해 가고 있습니다. "농촌에도 CEO가 필요하다" 어쩌구 하는 명박스러움을 넘어, 생태적 전환을 한국 농업의 회생을 위한 계기로 만드는 정책의 생산이 필요합니다. 이는 물론 위의 소비자 운동과 연동되어야겠지요. (이 부분은 저보다 잘 아는 분이 상세히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2.

미국산 쇠고기 반대운동을 일상적인 농산물 생산과 소비의 생태주의적 전환운동을 승화시키는 것과 더불어, 촛불집회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촛불집회를 계속 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비율은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실제로 한겨레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제의식에는 여전히 공감하나, 촛불집회의 계속에는 반대한다고 대답한 수치가 촛불집회를 계속해야 한다는 수치와 엇비슷하게 나옵니다.) 이는 촛불집회를 단순히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언젠가 집회 참가자들이 여론으로부터 고립되어 버릴 것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종교계의 가세로 촛불집회가 연장이 되긴 했지만, 그 효과는 영속적인 게 아니죠.

게다가 두 달 넘게 촛불집회를 하느라, 시민들이 많이 지치기도 했지요. 이제 촛불집회의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양적 관점에서 질적 관점으로 시각을 전환해야 합니다. 평시에는 참가자의 에너지 소모를 막고, 촛불시위로 불편을 입는 운전자나 주변상인들의 민원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소규모로 준법시위를 벌여야 한다고 봅니다. 집회가 끝나면, 그 동안 집회로 타격을 입었던 음식점에서 뒤풀이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청계광장이든, 시청앞이든, 아주 조그만 문화제 형식으로 촛불시위를 이어나감으로써 '촛불은 결코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매번 집회를 할 때마다 뭔가 다른 형식을 선보이는 창의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다가 가령  집중집회가 잡혀있는 7월 12일 같은 주말이나, 그 밖에 이 이슈와 관련하여 특별한 계기가 생길 때에는 언제라도 다시 결집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입니다. 청와대로 가기 위해 물리력을 동원하는 것도 좋지만, 청와대 가는 800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경찰의 제지를 받았던 촛불소녀들의 창의력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상상력으로 명박산성을 넘지 않았던가요?

3.

어차피 반성하지 않는 정권, 앞으로 4년 내내 길 밖으로 쏟아져 나올 일이 계속 터질 것 같다는 예감이야 누구나 갖고 있을 것입니다. 의제의 확산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의제의 확산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제가 촛불집회 처음부터 강조했고, 또 얼마 전에 '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지적했듯이, 촛불집회의 바탕에는 '쇠고기 문제보다 더 깊은 분노'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분노는,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대기업에서 자동차 몇 대 더 파느냐', 아니면 '국민의 생명권을 더 중시하느냐'의 선택지에서 아무 생각 없이 전자를 선택한 정권의 천박한 시장주의 이념에 대한 반감입니다.

이는 쇠고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을 인격이 아닌 생산의 투입요소로 보아 소모적인 경쟁(그것도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70년대 방식)으로 몰아넣는 미친 교육, 시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위한 의료의 공공성을 간단히 '산업'의 논리로 무력화시키는 위험한 발상, 시민의 생존권의 영역에 속하는 물과 에너지를 공공재가 아닌 상품으로 팔아먹겠다는 천박한 사고.... 촛불집회는 이 모든 명박스러움에 대한 반발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촛불집회를 통해 확인된 시민의 힘을, 이명박 정권이라는 시장주의 탈레반들과의 싸움에서 사회적 공공성을 수호하기 위한 저항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이명박 정권의 태도로 볼 때, 이 싸움 어차피 다양한 이슈를 놓고 4년 내내 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온라인의 네티즌들, 오프라인의 시민단체들, 그리고 야당의 위치에 있는 여러 정당들의 헙력으로, 장기적인 저항의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를 위해 무슨 국민본부 같은 단체를 결성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오프라인의 구심점 없이 이제까지 촛불집회가 그렇게 진행되어 온 처럼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움직이되, 이제까지와는 다른 뭔가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미하는 형태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아니면 그것을 뛰어넘는 또 다른 대안이 있을 수도 있겠구요.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가 될지는 네티즌들의 대중지성에 맡겨 보려 합니다.

4.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를 저지하는 것이겠지요. 이미 아고라의 일부 네티즌들은 시청에서 KBS, MBC, YTN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의제와 확장은, 누가 지시하거나 명령할 것도 없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조중동을 타격하기 위한 '숙제'를 열심히 하는 것, 경향, 한겨레, 시사IN,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다음과 같은 포털 사이트를 돕는  활동도 이 사회의 언론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상적 활동이겠지요. 이번에 조중동이 엄청나게 타격을 입기는 한 모양입니다. 다음의 기사를 끊을 정도로 히스테리컬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십시요. ㅋㅋㅋ....

다른 하나는 7월 30일 서울시 교육감 선거입니다. 총선, 대선이 4, 5년 남은 이상, 시민들이 정권을 합법적으로 심판할 유일한 기회입니다. 이 선거에서 승리하여 이명박 정권의 미친 교육을 심판한다면, 두 달 동안의 촛불집회가 절반의 승리에 그치고 만 데서 비롯된 시민들의 좌절감을 상당 부분 극복하고, 앞으로 다가올 4, 5년 동안의 장기전을 위한 자신감을 심어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싸움이지요. 아직 공식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진보신당과 칼라TV의 분위기도 법이 허용하는 한계 내에서 이 싸움을 최대한 도우려 하는 쪽입니다.

다른 한편, 민주노총, 특히 화물연대나 금속노조의 파업을 통해 촛불과 노동운동 사이의 연대가 확인되었습니다. 물론 노조의 파업에 대한 지지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번 촛불집회가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서로 처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아쉬운 게 있다면, 이랜드, 기륭전자, KTX 여승무원 노조와 같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이 촛불 속에 묻혀 버린 것입니다. 이번 촛불집회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같이 참여했다는 점, 잊지 맙시다. 그리고 이들의 처지가 곧 나의 처지요, 우리가 낳은 아이들의 처지입니다. 촛불집회를 통해 얻어진 연대의 정신이 앞으로 계속 이어졌으면 좋겟습니다.

5.

이 모두가 실은 대의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현상입니다. 대의제는 간접 민주주의라, 국민의 의사가 왜곡되는 제도적 한계를 안고 있지요.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국민의 80%가 반대하는 정책을 강행하는 극단성을 보이는 것은 대의제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운용하는 가운데 거기에 내재된 위험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현상이라 봅니다. 국민의 80%라면, 심지어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찍었던 사람들마저 배신당했다는 얘기죠. 그것은 대한민국 정당들 중에 제대로 된 놈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민주노동당이든, 창조한국당이든, 아니면 진보신당이든, 자기의 정치적 정체성에 맞는 정당에 가입하셔서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셨으면 합니다. 정치에 대한 혐오증이 이명박이라는 혐오스러운 대통령을 낳았다는 점을 잊지 맙시다. 이 문제, 하루 이틀에 해결될 문제 아닙니다. (이른바 명빠들 중에는 지역감정의 노예가 되어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전라디언'이라 부르는 저질들이 많더군요. 이 모두가 한국의 정당정치가 얼마나 왜곡됐는지 보여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살았다고 우리의 아이들에게까지 이런 후진적 정치를 물려줄 수는 없습니다. 왜? 이 후진적 정치가 우리 삶을 얼마나 괴롭히는지 이미 체험해 보지 않았습니까.

어차피 대안은 거리에서 찾아질 수 없습니다. 해결책은 어차피 정책이라는 형태로 수립되고, 법률이라는 형태로 고정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정당 자체를 바로잡고, 나아가 보수 일색의 정당구조를 바로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아마 몇 십 년 후에 우리의 아이들마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밤을 지새워야 할 겁니다.

6.

형식적이긴 하지만 대통령이 두 번 사과를 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랴부랴 추가협상을 하여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들여온다고 합니다. 촛불에 놀라 정부에서는 수도와 전기, 의료의 민영화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대운하도 추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물론 벌써부터 딴 소리가 흘러나오지만, 정부에서 공언을 해놓고 나중에 다시 추진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그때는 아마 '이명박 퇴진'이라는 구호가 상징적 구호를 넘어 현실적 요구가 될 것입니다. 그때는 정말 이명박씨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운동이 벌어질 것이고, 또 그를 정말로 끌어내릴 겁니다. 절반의 승리라고 할까요?

하지만 촛불이 거둔 성과는 정작 다른 데에 있습니다. 이제까지 정치에 관심 없던 시민들이 드디어 정치가 자신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정당이나 단체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창의성으로  정치의 또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직접 경찰에 맞서다가 위협당하고, 연행 당하고, 폭행당하고, 구속당하면서 시민이 주권을 잃으면 국가권력으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는지 생생히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태가 자신들의 정치적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절실히 깨닫고, 자신을 정치적 주체로 세워냈습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촛불이 거둔 승리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들은 '냄비'를 얘기합니다. 그런데 어떤 냄비가 두 달을 끓습니까? 나중에는 자기들도 지겨워할 정도로 그만 좀 끓으라고 애원을 하지 않습디까? 촛불집회를 통해 시민들은 쉽게 달아올랐다가 금방 식는 냄비가 아니라, 한번 끓으면 두 달 동안 지글거리는 뚝배기임을 입증해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진짜 뚝배기가 되려면,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제가 앞에서 말한 일상의 실천 속에서도 열기와 온기를 보존할 때, 그때 시민들은 진정한 뚝배기가 될 것입니다.

스크롤 압박을 주는 긴 글, 읽어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진보신당과 칼라티비는 촛불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 싸움에 끝까지 동참하고, 수 십 만개의 촛불이 빛나는 영광스러운 순간만이 아니라, 수백 개의 촛불이 권력과 보수언론의 파상공세를 받는 어려울 때에도 촛불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Posted by 별이빛나는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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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게시판에서 퍼왔습니다.
http://www.newjinbo.org/board/view.php?id=discussion&no=7092

진보신당과 촛불집회에 관한 단상
진중권, 2008-05-27 19:26:05 (코멘트: 13개, 조회수: 501번)

노회찬 대표를 만났는데, SBS 방송 끝난 다음에 새벽 여섯 시까지 창원인가, 울산인가로 내려가야 한다고 하더군요. 지금 당대표들은 다른 일로 바쁩니다. 당에서 할 일에는 여러 가지 일이 있기 마련이니, 그것으로 당 대표들을 타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빈틈을 당원들의 자발적 행동으로 메꿔주는 것이 바로 진보신당의 정신이 아닐까요? 아무튼 촛불집회를 생중계하면서 느낀 점을 몇 마디 하겠습니다.

1. 진보신당은 수습책을 제시하라

대중들이 스스로 깨닫고 있습니다. 어제 인터뷰 중에 여러 사람이 다가와, 사회의 단체나 사회의 인사 등 아무라도 좋으니 누군가 책임을 지고 방향을 제시할 단위를 만들어야 하지 않냐고 제게 항의하더군요. 쩝...  거리에서 대중들이 할 일이 있는가 하면, 합법정당으로서 진보신당은  그것을 보완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일단 대중들에게 구체적 목표를 제시해야 합니다. 정부여당은 강경진압 밖에 생각을 못 하는 것 같고, 통합민주당도 자신들의 원죄 때문에 제 대로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진보신당에서 대중들 앞에 사태를 수습할 대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1) 즉시 재협상에 들어갈 것
(2) 협상의 과실이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것.
(3) 연행자 및 구속자의 즉각 석방
(4) '배후' 운운한 데에 대해 정부여당과 경찰과 검찰의 공식적 사과
(5) 그 밖에 대운하처럼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정책을 강행을 포기한다고 선언할 것

등등.

물론 해야 할 요구는 산더미 같이 많겠지만, 요구는 '상대방인 정부여당 측에서도 받아들일 만하다'고 대중이 느낄 정도로 최소화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2. 당 대표들이 나서서 수습책을 발표하라

당 대표들은 아무리 바빠도 한 번 정도 시간을 내서 촛불집회에 참석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집회에 나와서 공식적으로 수습책을 발표하고, 이를 통합민주당,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 자유선진당 등을 아우르는 정치권의 공통적 요구로 합의해 낼 필요가 있습니다. 대중들은 지금 거리에서 정당이나 조직, 시민단체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고립된 채 외로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부여당은 물론이고, 같은 편이 될 수 있는 진영에까지 버림 받았다고 느끼는 거죠.

평소에 정치라는 것 모르고 살던 분들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 분들입니다. 정당이라면, 그들의 분노를 합법적이고 합리적으로 표출한 방법을 제시해야 합니다. 거리에서 그들이 내는 항의의 외침이 결코 외로운 것이 아니며, 제도권 정당이나 단체나 조직들이 시민들을 지켜주는 방호복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야 합니다. 알량한 명성이나마, 이름 알려진 놈 하나가 현장에서 얼쩡거리는 것만으로도 대중들은 든든함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정치가 뭔지 모르고, 평생 데모라고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과거 우리처럼 운동권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대통령에게 버림 받고, 정부관료들로부터 배신당하고, 보수언론으로부터 맺도당하고, 야당과 시민단체들의 도움도 제대로 못 받고 맨 몸으로 새벽이 넘도록 아스팔트 위에 서 있는 사람들. 너무 안쓰럽습니다.


3. 촛불집회 및 시위에 참가하는 방법을 제시하라

시위를 하다 보면  이렇다할 맥락 없이 일반 시민들보다 현저히 과도하게 격앙된 제스처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 시민들이 제게 와서 프락치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있다고 알려주더군요. 정말 프락치인지, 아니면 그저 흥분을 잘하는 성격을 가진 일반시민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과도하게 격앙된 사람들을 일반시민들과 분리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집회나 시위가 평화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식적인 행동지침을 정해 시민들에게 숙지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좌절한 시민들이 자해와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도록, 승리에 대한 희망을 주고, 흥분한 시민들이 과격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냉정한 분노를 주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시민들은 이런 경우가 처음일 겁니다. 연행됐을 경우 어떻게 행동하고, 어디에 연락을 해야 하는지 숙지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진보신당의 '시민지킴이 변호인단의 대표 전화 하나를 시민들에게 알려주고, 앞면에는 변호인단 전화번호, 뒷면에는 연행시 행동지침을 간단히 적은 명함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나눠줄 필요가 있습니다.

Posted by 별이빛나는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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