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꼴보수단체들이 이상한 짓거리를 하는 것을 보면서 바로 떠올랐다.

이명박시대는 이승만시대와 비슷하다고....
성과주의에 대한 집착이 박정희시절과 비슷한 것은 시대 상황이 그런 것이고
통치형태는 이승만과 같다.

어버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우파단체들은 시민단체가 아니라 테러단체나 다를바 없다.
민주사회에서는 존재해서는 안되는 단체들이다.
이런 것들을 용인하고 방조하고 육성했던 사람이 이승만이다.

자유개척청년단이라는 단어를 들으면서 서북청년단이 떠오르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일까?
이제 생활고에 시달리는 20,30대를 돈을 주고 꼬드겨서 극우파의 행동대를 조직할지도 모른다.

가장 안좋은 경우는 이명박이 박근혜를 코너로 몰고가서
그를 민주투사로 만드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랬다.
좌파의 씨를 말린 이승만이 우파중에서도 마음에 안드는 사람들을 축출했고
그로 말미암아 한국의 보수야당과 민주화운동이 출발했다.

정말 짜증나는 상황이다.


도를 넘었다… 찾아보세요, 우리가 잊은 가치들

한국일보 | 입력 2010.01.22 02:37

 



"판결 불만" 대법원장 車에 계란투척·판사집 앞 시위
정치권·일부 언론까지 가세 사법부 압박 '위험 수위'

MBC PD수첩 사건 등 정치적 논란이 됐던 사건들에 대한 법원의 잇단 무죄 판결에 반발하는 보수진영의 비판과 항의가 도를 넘어 공격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여당과 일부 보수언론이 연일 이념적 잣대로 사법부를 흔들면서 이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3심제'라는 사법적 절차로 풀어야 할 판결에 대한 불만이 장외 이념대결로 확산될 경우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동시다발적인 집회를 갖고 법원을 향해 "인민재판소", "좌익 판결" 등의 구호를 외치며 색깔 공세를 퍼부었다. 특히 일부 회원들은 대법원장 관용 차량에 계란을 투척하는 일까지 벌였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회원 등 50여명은 이날 오전7시부터 서울 한남동 대법원장 공관 앞에 모여 대법원장 출근 저지에 나섰다가 경찰의 제지를 받자, 3명이 공관 근처 육교에 올라 관용차를 향해 계란을 던졌다.

이들이 던진 계란 4개 중 2개가 조수석 유리창과 지붕에 맞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장 차량에 계란을 던지는 행위는 사법 사상 처음"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보수국민연합 등 다른 보수단체 회원 100여명도 이날 오후 2시 20분께 서울중앙지법에서 '이용훈 즉각 퇴진' 등의 문구와 사진이 들어간 피켓을 불태우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법원 청사 난입까지 시도하다 경찰의 저지로 20분 만에 물러났다.

앞서 보수단체 회원들은 19일 강기갑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 남부지법 이동연 판사의 양천구 자택 앞에서 집회를 연데 이어20일에도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를 결정한 서울고법 이광범 부장판사의 서초동 아파트 단지로 몰려가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동연 판사는 '누군가 출근길을 미행한다'는 소문까지 돌자 19일부터 귀가하지 못하다가 이날 휴가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법원에 대한 반발이 과격화하자, 1950년대식'사법 테러'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1950년대 진보당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에 불만을 품은 반공단체들이 당시 판사에 위협을 가하고 대법원 청사에 난입했는데, 그 시절로 후퇴하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보수성향의 바른사회시민회의 전희경 정책실장도"판결결과에 납득하지 못하는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그럴수록 차분하게 의견을 표출해야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당과 보수언론이 법리적 비판 외에 판사의 나이나 성향 등을 따지며 '이념 대결'로 몰고 가면서 과격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이날 한나라당 지도부는 문제의 판결들에 대해 "숨죽인 정권붕괴세력에 홍위병식 광풍을 몰고 올 죽창을 쥐어준 꼴"(장광근 사무총장), "사법 독선"(안상수 원내대표), "군대의 하나회 비슷한 사조직이 집단적 움직임 주도"(정몽준 대표) 등의 표현을 쏟아내며 맹공을 퍼부었다.

법조계나 학자들은 판결에 불만이 있다면 여론전이 아니라 상급심의 판단으로 가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검찰의 한 간부는 "누구의 주장이 옳든 그르든, 법정이란 링 안에서 싸워야지 링 밖으로 끌어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판결의 합리성을 높이기 위해 3심제가 있는 것"이라며 "법치를 내세우는 보수가 사법부를 공격하는 것은 아이러니인데, '내 생각만 옳다'는 권위주의적 법치가 아닌지 되새겨 봐야 한다"고 말했다.

판사 임용절차나 전관예우 등 사법부의 문제는 이번 판결과는 별개로 풀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평 경북대 교수는 "사법권 독립 못지 않게 사법의 책임도 중요한 헌법적 가치다"라며 "그 동안 보수든 진보든 사법부의 권한 강화에만 초점을 맞춰왔는데, 사법 책임도 구현할 수 있는 전반적인 틀을 갖춰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검은 이날 계란 투척 사건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고 서울중앙지검도 법원 앞 시위에 엄정 대처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관할 경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Posted by 별이빛나는밤

댓글을 달아 주세요

감옥은 사회에서 격리해야 할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과 분리하는 국가기관이다. 한국현대사에서 서대문형무소 또한 이러한 역할을 하였다. 일제가 만든 서대문형무소는 해방이 된 후 경성형무소,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서, 서울구치소 등 이름을 바꿔갔지만 기본적인 역할은 같았다. 감옥의 이름이 죄 있는 사람에게 벌을 주는 의미가 강한 형무소에서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교도소, 그리고 교도소와 구치소가 분리되면서 구치소로 변경되었지만 그 본질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감옥은 그 사회의 어두운 곳을 보여주지만 그 사회의 권력갈등의 최정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권력을 잡고 있는 지배집단의 성격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그 사회의 인권의 수준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곳이 감옥이기도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대문형무소 정문. 1967년 이후 서울구치소로 이용되었으며, 1987년 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으로 이전되면서 역사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대문형무소는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많은 인연을 맺고 있다. 대한민국의 초대대통령인 이승만은 부정선거를 통해 독재를 연장하려다 하와이로 망명하고 부정선거를 실시한 최인기 등 내무장관은 군사정권에 의해서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했다. 마찬가지로 이승만대통령 집권기에 좌익으로 몰려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어 죽을 뻔한 박정희는 그의 재임기간 대통령후보였던 김대중대통령을 죽이려는 시도를 여러 번 했고, 박정희의 암살이후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대통령은 실재로 김대중에게 사형을 언도하여 김대중대통령은 사형수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기도 했다. 이후 김영삼대통령은 역사바로세우기운동으로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을 처벌했다. 이러한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은 온 국민을 충격에 빠지게 했는데, 우리 사회의 이러한 정치보복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 자신의 임기 동안 많은 민주인사를 감옥에 투옥시키고 일부는 사형을 시켰다.

독재기도와 쿠데타,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 과정에서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는 대통령과 후임 대통령에게 구속당하는 대통령이 많은 것이 우리 현대사이다. 이렇게 전임 권력과의 갈등이 큰 것은 권력이 권력을 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간에 하나의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일반 국민들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토대가 매우 취약하여 권력집단간의 권력경쟁으로 권력이 사유화되면서  권력경쟁이 정상적인 방식으로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감옥은 권력을 쥔 집단이 사회에서 배제하고 싶은 사람들을 가두는 곳이다. 우리 현대사는 큰 굴곡과 감당하기 어려운 변화가 많았다. 서대문형무소 또한 투옥된 사람들을 보면 역사에에 배제된 현대사의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해방이 된 후 초창기에는 친일파들이 반민족특별법에 의해 구속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친일파가 사회의 주요 분야에 중용되면서 이제는 역전이 되어 독립운동가들이 중에는 간첩혐의 등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일종의 역청산이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해방후 좌우익 갈등으로 남한에는 공산당 등이 불법화되면서 전국의 감옥은 좌익인사로 넘쳐난다. 결국 해방이후 정부수립에 동의하지 않는 독립운동가들과 좌익들은 사회의 주요 구성원에서 배제되었다.


이승만정부와 박정희 정부,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 정부에 이르기까지 감옥에는 민주화운동을 하는 지식인, 종교인, 학생들, 노동자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양심에 따라 살아야 하는 지식인과 종교인, 그리고 이성에 따른 실천을 하는 학생들이 구속되었다는 사실은 권력을 갖고 있는 집권자들이 이들을 사회에서 배제하려고 했고, 권력집단이 도덕성과 정당성을 상실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민주화된 개혁정부에서도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구속되고 있다는 점은 개혁정부조차 노동자들을 배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용산 철거민들이 구속된 사실은 현재의 집권한 정부가 주거권을 요구하는 사회 최하위층의 요구를 무시하고 배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네르바의 구속(법원에 의해 석방되었지만)은 평범한 사람조차 구속될 수 있는 이명박정권의 성격을 보여준다. 이렇게 감옥에 누가 갇혀 있는지를 보면 권력을 갖고 있는 지배집단의 성격이 무엇인지 분명이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문 기술자' 이근안

또한 감옥은 우리 사회의 인권의 수준을 보여준다. 죄을 짓고 수감되어 있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의 인권의 바로미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제시대도 아닌데 87년 민주화운동으로 세상이 바뀌기 전까지는 고문이 자행되었다. 고문은 주로 정치범에게 자행되었지만 일반 수감자들 또한 처음 체포될 때부터 감옥에 수감되어 생활할 때까지 일상적인 폭행과 법과 규칙에 근거하지 않는 처벌을 받았다. 지금도 감옥에서는 독방구금 등 각종 처벌이 남아 있다. 법과 규칙에 근거하지 않은 개인의 신체에 대한 처벌은 법치주의를 훼손한다.

 우리
현대사에서 서대문형무소는 일반적인 교도소의 역할만을 한 것은 아니다. 흉악범들과 일반 사범들이 수감되어 있는 곳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깝게도 서대문형무소는 이러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한 사람들과 독재에 항거한 사람들, 권력을 쥔 사람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 먹고 사는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들이 구속되어 있었다. 즉, 우리 사회의 발전과 다양성을 위해서 하나의 당당한 주체로 함께 가야할 사람들이 구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동했다면 지금과 같은 정체성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또 하나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서대문형무소에 구속된 민주화인사들과 노동자들의 활동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진척되고 이만큼 살 만한 사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우리 사회에서 서대문형무소는 춥고 어두운 곳이었지만 또한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민주국가를 만드는 곳이기도 했다.

Posted by 별이빛나는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서대문형무소



개화운동으로 투옥된 이승만대통령,

재임기간 가장 많이 사형시켜


초대대통령인 이승만은 개화・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경성감옥의 전신인 전옥서를 시작으로 서로문감옥을 거쳐 서대문감옥에서 6연여의 옥고를 치뤘다. 이승만대통령은 감옥에 투옥되어 있으면서 '독립졍신'을 비롯하여 '한영사전' 그리고 여러 편의 논설을 썼다. 해방 후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이승만은 두 번씩이나 서대문감옥을 시찰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이 된 후에는 자신이 투옥되어 있던 서대문형무소에 그에게 도전하는 많은 정치범을 투옥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중에서는 몇 명을 처형하기도 하였다. 이승만대통령 12년 동안 집행된 사형건수를 보면 335명으로 월평균 2.4명을 사형시켰는데, 이는 월평균 기준으로 가장 많은 사형을 집행하였다.

이승만정부시설 좌우익 대립과 친일파청산 문제 등으로 최남선 등 친일파들이 수감되기도 하지만 사형을 당한 사람들은 이승만과 대립하는 사람들이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후 친일경찰의 발호에 맞서 싸웠던 최능진은 친일경찰들과의 대립으로 권고사직당하고, 이후 선거에서 이승만의 선거구에 나왔다가 이승만세력의 방해로 후보등록이 무효화되고, 한국전쟁 와중 내란혐의로 구속되어 사형을 당한다.(1951. 2.11) 또한 대한민국 초대국회의 부의장과 이승만정부의 농림부장관을 지냈던 조봉암은 평화통일을 주장하면서 1956년 5․15 대통령 선거에서 200여만 표 이상을 얻어 이승만 정권에 위협적인 정치인으로 부상하자 간첩혐의로 처형하였다.




<경향신문 2009.10.11>




좌익으로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박정희대통령,

쿠데타 후 수많은 정치・사상범 사형시켜


박정희대통령 또한 자신이 서대문감옥에 투옥되기도 했지만 이승만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죄없는 많은 정치범을 사형시켰다. 1948년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은 남북간의 전쟁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김구와 김규식 등의 민족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런데 2개월 뒤에 여수와 순천에서 군인들의 반란이 일어나면서 군대내의 공산주의 세력을 없애는 숙군작업이 일어났다. 1948년 11월 박정희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좌익혐의로 체포되었고 박정희는 모든 것을 자백하였다. 박정희는 군부 내 남로당 조직 명단을 순순히 털어놓았고, 이를 통해 군부 내 조직원들, 특히 육사 내부의 남로당 세포들이 다수 적발되었다. 박정희의 자백이후 군내의 만주인맥들의 구명이 이루어졌고, 그는 형인 박상희가 대구폭동 때 사망하면서 형 박상희의 죽음 때문에 생긴 복수심으로 남로당에 가입한 감상적 공산주의자로 인정받으면서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이승만정부에서 좌익혐의로 사선을 넘나들었던 박정희대통령은 그가 대통령이 된 후 4.19 당시 부정선거의 원흉으로 지목되었던 최인규내무장관과 경무대경찰서장 곽영주, 정치깡패두목 이정재를 사형시켰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은 '괴뢰정권이 주장하는 평화통일론을 보도 선동해 반국가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 받은지 넉 달만에 사형을 당했으며, 북한 지령 받아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민청학련 조종하고 국가 전복하려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인혁당 사건 희생자 7명은 사형 확정된 지 18시간만에 사형 당했다. 박정희정권 기간 많은 민주화운동가들이 사상범으로 몰려 사형을 당하였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악연과 화해?


전두환대통령과 노태우대통령은 12.12 쿠데타를 통해서 정권을 잡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김대중대통령은 전두환 중심 신군부가 집권하는 과정에서 소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주범으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김대중대통령은 사형을 면하고 미국 망명길에 오른다. 또한 신군부가 집권을 하면서 김영삼대통령 또한 가택연금을 당했다. 재미있는 것은 김영삼대통령이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으로 전두환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노태우 전대통령에게 중형을 선고한 반면, 전두환정권에 의해 사형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김대중대통령은 대통령이 당선된 후 김영삼대통령에게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을 건의해서 이들이 사면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김영삼대통령은 1997년 12월 22일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을 사면하고, 며칠 뒤인 12월 30일에는 231)명의 사형수의 사형을 집행하였다. 민간인 수백명을 죽인 권력자는 사면을 받는 반면 흉악범이라는 개인들은 조용히 사라지는 아이러니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가?



1) 김삼웅은 『서대문형무소 근현대』의 ‘이승만과 서대문감옥’편에서 ‘우남(이승만)이 언제 서대문감옥으로 이감되어 그곳에서 옥고를 치뤘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무기로수 감형된 우남은 언제부터인지 서대문감옥으로 옮겨져서 비교적 수월한 옥살이를 하였다’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승만대통령은 1904년 8월 9일에 석방되었는데 서대문형무소(경성감옥)은 1908년에 신축되었으므로 정확한 확인이 필요함.

2) 정부수립이후 920명을 사형시켰다는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의 기록에는 김영삼정부에서 11명을 사형시킨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기록간에 상이한 부분이 발견됨.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천연동 | %uC11C%uB300%uBB38%uD615%uBB34%uC18C%uC5ED%uC0AC%uAD00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별이빛나는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기운찬 2009.12.22 1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지만... 생각해 볼 글이네요. 정당성이 없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행해진 만행을 생각하며... 그런 만행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기억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평화길라잡이로 활동하시나 보네요. 멋진 활동에 박수를 보냅니다

  2. 연세대생 2011.11.24 0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청년 이승만은 많은 교훈을 준다. 나중의 독재행적과는 구별되는...

  3. 까망가방하양필통 2016.08.28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자료와 글 잘 보고 갑니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다녀와서 다녀온 후기를 적으면서
    특히 해방후에 이런저런 사실들에 먹먹한 감 숨길수 없네요,
    여기 글중에 일부는 발췌하여 옮겨적습니다.
    원글 발췌한곳 분명히 표기하겟습니다.

조봉암선생 서거 50주년을 맞아 여야 정치계, 특히 진보정당에서 그 분을 조명하는 행사가 어제 열렸다고 한다. 민주노동당은 북진통일을 반대하고 평화통일론을 정립한 정치가로, 진보신당은 진보적 대중정치인으로 조명하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사민주의자로서 조봉암을 평가하고 있다. 각자 처한 입장과 정치적 이념에 따라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들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객관적으로 봐야 할 점은 이런 게 아닐까한다. 조봉암은 북의 혁명노선에 동의하지 않고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선거에도 참여했다. 물론 대한민국의 주류는 그를 버렸다. 조봉암은 대한민국을 인정하고 참여했지만 대한민국의 기득권세력은 그를 버렸고, 이후 민주화운동은 그런 역사의 반복이었다.

그의 평화통일론은 남반부의 혁명을 통해 폭력적으로 남한을 통일시키겠다는 북이나, 북진통일을 통해 강제적으로 통일하겠다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반대였다. 민주노동당의 조봉암에 대한 조명은 일부분 맞지만, 북한 또한 남진통일을 실재로 시도했다가 실패했고 이후에도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점에 대한 인정없는 조봉암에 대한 조명은 아주 편의적이고 정치적인 조명일 뿐이다.

진보신당은 조봉암의 진보적 대중정치인으로서의 리더쉽에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부분은 우리가 충분히 공감하고 존경하는 부분이다. 항상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낙천적이었던 그 분의 성품은 운동을 좋아하고 쾌활했던 여운형선생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진보신당이 대중정치인으로서 조봉암을 조명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봉암선생의 진보당이 대중조직과의 연계가 없었다는 한계가 그대로 진보신당의 무기력한 현재 상태에 대한 변명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지금은 조봉암선생이 정치하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토양이 좋기 때문이다.

주대환씨 등이 활동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연대는 사회민주주의자로서 조봉암선생을 조명하고 있다. 분명 그런 부분이 있지만 과연 그 분이 스스로 사회민주주의자로고 했는지도 의문이고, 과연 그런 방식으로 딱지 붙여서 누구를 조명하는게 올바른지 의문이다. 조봉암 선생은 당시 우리 사회에 필요하고 혜쳐나가야 할 과제와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했을 뿐이다.

아래는 레디앙의 조봉산 선생 관련 기사(
지금 왜 조봉암인가?)에 달린 댓글인데, 많은 부분 공감이 간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매우 원칙적인 비판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나 또한 예전에 그렇게 했기에 뭐라 말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또한 나도 보았지만 이정우교수가 조봉암과 노무현을 비교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불쾌하다. 노무현의 정치적 유산은 제로이거나 마이너스이다. 그의 서거를 슬퍼하는 것은 한 개인으로서 당연한 감정과 이명박의 정치적 탄압속에서 동병상련과 지켜주지 못한 책임감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추진한 한미FTA, 비정규직법, 이라크파병을 어떻게 감출 수 있나? 농지개혁을 주도했던 조봉암과 한미FTA와 비정규직법 개악을 주도했던 노무현, 평화통일론을 주장했던 조봉암과 이라크파병을 어쩔수 없는 것이라면서 파병을 강행했던 노무현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가?

어짜피 과거의 인물에 대해서 우리가 받아들이고 싶은 부분만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기본적인 속성일 것이다. 다만 과거 조봉암을 쳐다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했던 사람들은 한번이라도 그런 자신의 과거의 행적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
민주주의
  2009-07-29 17:54:19  
 
조봉암을 바로보라.
그는 민주주의에 충실했고, 남한내부적으론 가장 진보적이었으며 전한반적으로 중도파였으며, 미소와 이승만 김일성의 길이 아닌 제3의길을 제시했다. '피해대중의 정치'를 무슨 노무현과 연결시키는 노빠들, 통일지상주의로 해석하는 종북민족파들,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는 자들은 X잡고 반성해야한다. 려운형을 계승한 진보정치, 민주주의, 독자적 대안에 의한 자주노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민주주의
  2009-07-29 18:01:13  
 
죽산을 왜곡 해석하는 건 범죄다.
노빠무리는 그뿌리가 한민당이란걸 숨기려는 것이고, 민노당의 주류 자주파는 60년대 초 사회당과 이후 통혁당으로 이어지는자들에 정서적으로 뿌리가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조봉암을 김일성보다 나쁘다(조병옥), 조봉암은 변절, 기회주의(녹슬은 해방구에 나오는 주류좌익들)라고 매도했던 무리들이다. 그들의 후예들이 조봉암을 파는건 범죄다. 뉴라이트에 대비되는 의미로 뉴레프트인 주대환류는 더말할 나위가 없다.


민주주의
  2009-07-29 18:06:50  
 
오늘자 경향에서 이정우가 개소리하더군요.
그래도 이정우정도는 다르겠거니했는데, 졸지에 노무현을 죽산에 비교하더군요. 대통령까지 지내고 부정부패 비난 못견뎌서 자살한 자를... 죽산은 남한에선 진보이며 전한반도에서 중도이었지요. 현재적으로 말하자면 심상정 노회찬의 진보신당 같다랄까? 북구지향이랄까? 한미에프티에이하고 한나라당과 영남 대연정 추진한 신자유주의자 따위와는 근본적으로 달랐지요,


 민주주의
  2009-07-29 18:11:20  
 
력사의 의미를 심장에 새기자
1958.9년을 지나면서 남의 조봉암, 북의 김원봉, 안재홍, 김두봉등이 모두 정치무대서 사라졌지요. 한쪽에서 의미가 없어지면 다른쪽에서도 의미가 없어진다는...남쪽의 민주주의와 진보세력은 분명 북의 전체주의 1인 세습체제에도 부담입니다. 그런점에서 엉뚱한 짓거리로 소일하고 대북입장도 모호한 민노당이야말로 민중의 력량을 소모하는 어리석은 집단입니다.


민주주의
  2009-07-29 18:21:26  
 
려운형과 조봉암을 굳이 말한다면...
2차대전 전승영웅 처칠을 격침시키고 집권한 후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실현시키면서 해외식민지는 서서히 포기하고, 핵무장으로 소련에 맞섰던 영국노동당, 베트남전과 체코침공을 동시 비판한 팔메의 스웨덴 사민당정권, 냉전하 공산당과 손잡고 집권한 후 내부복지와 인권을 신장하면서 미국주도 군사동맹엔 거리를 두면서 소련을 격렬히 비판했던 미떼랑정권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이게 노무현인가? 친북자주인가? 웃긴다
 

Posted by 별이빛나는밤

댓글을 달아 주세요



혹시 이상돈교수가 침묵하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정권을 잡은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다시는 정권을 놓치지 않으려고-이 말을 바꾸면 장기집권하려고- 미디어법 통과라는 강수를 두었다. 하는 짓이 이승만과 같다. 부디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이승만과 자유당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1969년 3선 개헌’과 ‘2009년 미디어법’

(http://www.leesangdon.com/sub05/bbs_view.php?seq=232&db_name=colum_01)

이상돈 (2009년 7월 27일)

Posted by 별이빛나는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난주부터 '한국 현대사 60년', '비극의 현대 지도자' 를 읽었다.

한국현대사 60년은 해방이후 오늘날까지  약 60년에 걸친 한국현대사의 큰 흐름을 정리한 책이다. 6월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가 기획하고 서중석교수가 글을 썻다.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한국현대사를 서술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자유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오늘날의 민주화를 이룩했고, 선배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에 뿌듯함을 느낌 수 있다. 특히 소강상태이고 밀린 듯 보이지만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솟아오르는 우리 국민의 저력에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다만 6장의 마지막 절에 한국을 '민주화와 경제발전의 동시 달성'이라고 하고 있지만 민주화와 경제성장의 관계가 분명해 보이지는 않는다. 어쩌면  사회주의권이건, 자본주의권이건 당시 경제성장에 올인했다는 점, 무능했던 장면정권조차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성장은 당시의 시대정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점이 이승만정권과 박정희정권의 차이점이라고 생각이 든다.

한국현대사 60년의 차례는 다음과 같다.

1장 해방ㆍ분단ㆍ전쟁ㆍ이승만 독재
2장 4월혁명과 민주주의
3장 박정희 군부정권과 학생운동
4장 유신체제와 반독재투쟁
5장 광주민중항쟁에서 6월민주항쟁으로
6장 민주주의의 진전과 남북의 화해


서중석교수의 '비극의 현대 지도자'도 읽었는데 비극의 현대지도자란 여운형, 김규식, 김구, 이승만, 조봉암, 박정희, 장준하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하면 이 중 '5명은 국내 국외에서 민족해방투쟁을 전개하였고, 투옥되었다. 그런가 하면 1명은 미국에서 비교적 편안한 생활을 하였고, 다른 한명은 '황국군인'으로 '특등 일본인'이었다. 뒤의 2명은 외세와 깊숙히 연결되어 있었으나, 앞의 5명은 외세로부터의 자주성을 강력히 견지하였다. 냉전체제에서 후자한테만 권력이 돌아갔는데, 무한 권력으로 영구집권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후진 한국의 야수적 권력 본능을 엿볼 수 있다. 공과 사가 조화를 이루거나, 적시에 권력에서 물러날 수 있는 용기나 지혜를 갖지 못하고 비극적 종말로 질주한 것이다'. 문장에서 후자란 이승만과 박정희이다다.

냉전체제에서 후자(이승만, 박정희)한테만 권력이 돌아갔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아래는 책의 차례이다.

* 남북에서 존경받는 포용과 신념의 민족지도자 (여운형)
* 우사 김규식의 남북협상
* 김구노선의 좌절과 역사적 교훈
* 이승만 대통령의 반일운동과 한국민족주의
* 조봉암의 사회민주주의와 '제3의 길'
* 박정희 대일자세와 파행적 한일관계
* 분단체제타파에 몸던진 장준하


Posted by 별이빛나는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