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은 사회에서 격리해야 할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과 분리하는 국가기관이다. 한국현대사에서 서대문형무소 또한 이러한 역할을 하였다. 일제가 만든 서대문형무소는 해방이 된 후 경성형무소,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서, 서울구치소 등 이름을 바꿔갔지만 기본적인 역할은 같았다. 감옥의 이름이 죄 있는 사람에게 벌을 주는 의미가 강한 형무소에서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교도소, 그리고 교도소와 구치소가 분리되면서 구치소로 변경되었지만 그 본질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감옥은 그 사회의 어두운 곳을 보여주지만 그 사회의 권력갈등의 최정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권력을 잡고 있는 지배집단의 성격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그 사회의 인권의 수준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곳이 감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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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 정문. 1967년 이후 서울구치소로 이용되었으며, 1987년 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으로 이전되면서 역사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대문형무소는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많은 인연을 맺고 있다. 대한민국의 초대대통령인 이승만은 부정선거를 통해 독재를 연장하려다 하와이로 망명하고 부정선거를 실시한 최인기 등 내무장관은 군사정권에 의해서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했다. 마찬가지로 이승만대통령 집권기에 좌익으로 몰려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어 죽을 뻔한 박정희는 그의 재임기간 대통령후보였던 김대중대통령을 죽이려는 시도를 여러 번 했고, 박정희의 암살이후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대통령은 실재로 김대중에게 사형을 언도하여 김대중대통령은 사형수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기도 했다. 이후 김영삼대통령은 역사바로세우기운동으로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을 처벌했다. 이러한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은 온 국민을 충격에 빠지게 했는데, 우리 사회의 이러한 정치보복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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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 자신의 임기 동안 많은 민주인사를 감옥에 투옥시키고 일부는 사형을 시켰다.

독재기도와 쿠데타,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 과정에서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는 대통령과 후임 대통령에게 구속당하는 대통령이 많은 것이 우리 현대사이다. 이렇게 전임 권력과의 갈등이 큰 것은 권력이 권력을 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간에 하나의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일반 국민들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토대가 매우 취약하여 권력집단간의 권력경쟁으로 권력이 사유화되면서  권력경쟁이 정상적인 방식으로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감옥은 권력을 쥔 집단이 사회에서 배제하고 싶은 사람들을 가두는 곳이다. 우리 현대사는 큰 굴곡과 감당하기 어려운 변화가 많았다. 서대문형무소 또한 투옥된 사람들을 보면 역사에에 배제된 현대사의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해방이 된 후 초창기에는 친일파들이 반민족특별법에 의해 구속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친일파가 사회의 주요 분야에 중용되면서 이제는 역전이 되어 독립운동가들이 중에는 간첩혐의 등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일종의 역청산이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해방후 좌우익 갈등으로 남한에는 공산당 등이 불법화되면서 전국의 감옥은 좌익인사로 넘쳐난다. 결국 해방이후 정부수립에 동의하지 않는 독립운동가들과 좌익들은 사회의 주요 구성원에서 배제되었다.


이승만정부와 박정희 정부,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 정부에 이르기까지 감옥에는 민주화운동을 하는 지식인, 종교인, 학생들, 노동자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양심에 따라 살아야 하는 지식인과 종교인, 그리고 이성에 따른 실천을 하는 학생들이 구속되었다는 사실은 권력을 갖고 있는 집권자들이 이들을 사회에서 배제하려고 했고, 권력집단이 도덕성과 정당성을 상실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민주화된 개혁정부에서도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구속되고 있다는 점은 개혁정부조차 노동자들을 배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용산 철거민들이 구속된 사실은 현재의 집권한 정부가 주거권을 요구하는 사회 최하위층의 요구를 무시하고 배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네르바의 구속(법원에 의해 석방되었지만)은 평범한 사람조차 구속될 수 있는 이명박정권의 성격을 보여준다. 이렇게 감옥에 누가 갇혀 있는지를 보면 권력을 갖고 있는 지배집단의 성격이 무엇인지 분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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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기술자' 이근안

또한 감옥은 우리 사회의 인권의 수준을 보여준다. 죄을 짓고 수감되어 있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의 인권의 바로미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제시대도 아닌데 87년 민주화운동으로 세상이 바뀌기 전까지는 고문이 자행되었다. 고문은 주로 정치범에게 자행되었지만 일반 수감자들 또한 처음 체포될 때부터 감옥에 수감되어 생활할 때까지 일상적인 폭행과 법과 규칙에 근거하지 않는 처벌을 받았다. 지금도 감옥에서는 독방구금 등 각종 처벌이 남아 있다. 법과 규칙에 근거하지 않은 개인의 신체에 대한 처벌은 법치주의를 훼손한다.

 우리
현대사에서 서대문형무소는 일반적인 교도소의 역할만을 한 것은 아니다. 흉악범들과 일반 사범들이 수감되어 있는 곳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깝게도 서대문형무소는 이러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한 사람들과 독재에 항거한 사람들, 권력을 쥔 사람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 먹고 사는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들이 구속되어 있었다. 즉, 우리 사회의 발전과 다양성을 위해서 하나의 당당한 주체로 함께 가야할 사람들이 구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동했다면 지금과 같은 정체성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또 하나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서대문형무소에 구속된 민주화인사들과 노동자들의 활동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진척되고 이만큼 살 만한 사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우리 사회에서 서대문형무소는 춥고 어두운 곳이었지만 또한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민주국가를 만드는 곳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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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 마리학교 학생 6명을 대상으로 안내를 했다. 10여년전부터 지역에서 친하게 알고 지내는 분이 마리학교 교모이시고, 그 분의 딸도 현재 마리학교에서 일하고 있는데, 지난번에 서울KYC에서 하고 있는 서대문형무소 안내를 들어보라고 권유한 적이 있었다. 가급적 일요일날 안내를 신청하기를 바랬는데, 학교 일정상 금요일로 일정이 잡힌 것 같았다. 내가 권유를 했기 때문에 지방에 갔다가 일찍 올라와서 안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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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너무 추웠다. 너무 추워서 안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보안과 청사앞에서 시작을 했는데 아이들이 너무 추워서 그런지 집중을 하지 못했다. 결국 자세한 이야기는 실내에서 했다. 하지만 실내도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잘 들어주어서 고마웠다.

나는 서대문형무소를 안내할 때마다 독립운동이 단지 독립운동이 아니라 민주화운동과 연결되어 있고,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이 같은 개념이라고 강조를 하고 있다. 그래야만 안내를 듣는 사람들이 서대문형무소의 의미가, 독립운동의 의미가 현재의 우리의 삶과 관계가 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3.1운동기의 만세운동과 2008년의 촛불운동은 다 같은 것이다라는 식이다. 비약일 수 있으나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 비폭력운동이었지만 3.1운동은 이후 독립운동의 방도와 목표를 일깨워주웠고, 작년의 촛불운동은 이후 운동의 기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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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안내를 할 때는 사형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을 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919건의 사형집행을 했는데 그 중에 250여건이 정치사상범이라는 신문기사를 보았고 이것을 적절히 참고했다. 전체 사형건수의 1/3이다. 이것조차도 엄청 많은 것이고 문명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전두환정부이래 정치사상범의 사형집행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박정희정권기에 사형수의 가장 많은 수가 정치사상범이었다는  것이다. 이 나라 지배권력은 정치사상범을 흉악범보다 더 죄질이 나쁜 사람으로 취급한 것이다. 정말로 치가 떨리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사형장에서 안내할 때 사형제를 찬성하는 분들에게 이 이야기를 반드시 한다. 우리 사회에서 사형제는 단순한 사형제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정치범과 흉악범은 다르지 않냐고 하지만 4.19의 민주주의를 짓밟고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사회정화차원에서 정치깡패 이정재와 민족일보 조용수사장을 함께 사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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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가 끝난 며칠 후, 인솔자에게 안내가 어땠는지 물어봤다. 아이들이 재미있어 했다고 했다. 일단은 성공한 셈이다. 더 듣고 싶다고 하길래 다른 선생님들에도 들어보라고 했다. 안내하는 분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고, 그러한 차이를 들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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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서대문형무소



개화운동으로 투옥된 이승만대통령,

재임기간 가장 많이 사형시켜


초대대통령인 이승만은 개화・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경성감옥의 전신인 전옥서를 시작으로 서로문감옥을 거쳐 서대문감옥에서 6연여의 옥고를 치뤘다. 이승만대통령은 감옥에 투옥되어 있으면서 '독립졍신'을 비롯하여 '한영사전' 그리고 여러 편의 논설을 썼다. 해방 후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이승만은 두 번씩이나 서대문감옥을 시찰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이 된 후에는 자신이 투옥되어 있던 서대문형무소에 그에게 도전하는 많은 정치범을 투옥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중에서는 몇 명을 처형하기도 하였다. 이승만대통령 12년 동안 집행된 사형건수를 보면 335명으로 월평균 2.4명을 사형시켰는데, 이는 월평균 기준으로 가장 많은 사형을 집행하였다.

이승만정부시설 좌우익 대립과 친일파청산 문제 등으로 최남선 등 친일파들이 수감되기도 하지만 사형을 당한 사람들은 이승만과 대립하는 사람들이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후 친일경찰의 발호에 맞서 싸웠던 최능진은 친일경찰들과의 대립으로 권고사직당하고, 이후 선거에서 이승만의 선거구에 나왔다가 이승만세력의 방해로 후보등록이 무효화되고, 한국전쟁 와중 내란혐의로 구속되어 사형을 당한다.(1951. 2.11) 또한 대한민국 초대국회의 부의장과 이승만정부의 농림부장관을 지냈던 조봉암은 평화통일을 주장하면서 1956년 5․15 대통령 선거에서 200여만 표 이상을 얻어 이승만 정권에 위협적인 정치인으로 부상하자 간첩혐의로 처형하였다.




<경향신문 2009.10.11>




좌익으로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박정희대통령,

쿠데타 후 수많은 정치・사상범 사형시켜


박정희대통령 또한 자신이 서대문감옥에 투옥되기도 했지만 이승만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죄없는 많은 정치범을 사형시켰다. 1948년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은 남북간의 전쟁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김구와 김규식 등의 민족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런데 2개월 뒤에 여수와 순천에서 군인들의 반란이 일어나면서 군대내의 공산주의 세력을 없애는 숙군작업이 일어났다. 1948년 11월 박정희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좌익혐의로 체포되었고 박정희는 모든 것을 자백하였다. 박정희는 군부 내 남로당 조직 명단을 순순히 털어놓았고, 이를 통해 군부 내 조직원들, 특히 육사 내부의 남로당 세포들이 다수 적발되었다. 박정희의 자백이후 군내의 만주인맥들의 구명이 이루어졌고, 그는 형인 박상희가 대구폭동 때 사망하면서 형 박상희의 죽음 때문에 생긴 복수심으로 남로당에 가입한 감상적 공산주의자로 인정받으면서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이승만정부에서 좌익혐의로 사선을 넘나들었던 박정희대통령은 그가 대통령이 된 후 4.19 당시 부정선거의 원흉으로 지목되었던 최인규내무장관과 경무대경찰서장 곽영주, 정치깡패두목 이정재를 사형시켰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은 '괴뢰정권이 주장하는 평화통일론을 보도 선동해 반국가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 받은지 넉 달만에 사형을 당했으며, 북한 지령 받아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민청학련 조종하고 국가 전복하려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인혁당 사건 희생자 7명은 사형 확정된 지 18시간만에 사형 당했다. 박정희정권 기간 많은 민주화운동가들이 사상범으로 몰려 사형을 당하였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악연과 화해?


전두환대통령과 노태우대통령은 12.12 쿠데타를 통해서 정권을 잡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김대중대통령은 전두환 중심 신군부가 집권하는 과정에서 소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주범으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김대중대통령은 사형을 면하고 미국 망명길에 오른다. 또한 신군부가 집권을 하면서 김영삼대통령 또한 가택연금을 당했다. 재미있는 것은 김영삼대통령이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으로 전두환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노태우 전대통령에게 중형을 선고한 반면, 전두환정권에 의해 사형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김대중대통령은 대통령이 당선된 후 김영삼대통령에게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을 건의해서 이들이 사면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김영삼대통령은 1997년 12월 22일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을 사면하고, 며칠 뒤인 12월 30일에는 231)명의 사형수의 사형을 집행하였다. 민간인 수백명을 죽인 권력자는 사면을 받는 반면 흉악범이라는 개인들은 조용히 사라지는 아이러니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가?



1) 김삼웅은 『서대문형무소 근현대』의 ‘이승만과 서대문감옥’편에서 ‘우남(이승만)이 언제 서대문감옥으로 이감되어 그곳에서 옥고를 치뤘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무기로수 감형된 우남은 언제부터인지 서대문감옥으로 옮겨져서 비교적 수월한 옥살이를 하였다’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승만대통령은 1904년 8월 9일에 석방되었는데 서대문형무소(경성감옥)은 1908년에 신축되었으므로 정확한 확인이 필요함.

2) 정부수립이후 920명을 사형시켰다는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의 기록에는 김영삼정부에서 11명을 사형시킨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기록간에 상이한 부분이 발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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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운찬 2009.12.22 1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지만... 생각해 볼 글이네요. 정당성이 없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행해진 만행을 생각하며... 그런 만행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기억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평화길라잡이로 활동하시나 보네요. 멋진 활동에 박수를 보냅니다

  2. 연세대생 2011.11.24 0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청년 이승만은 많은 교훈을 준다. 나중의 독재행적과는 구별되는...

  3. 까망가방하양필통 2016.08.28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자료와 글 잘 보고 갑니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다녀와서 다녀온 후기를 적으면서
    특히 해방후에 이런저런 사실들에 먹먹한 감 숨길수 없네요,
    여기 글중에 일부는 발췌하여 옮겨적습니다.
    원글 발췌한곳 분명히 표기하겟습니다.

지난주부터 '한국 현대사 60년', '비극의 현대 지도자' 를 읽었다.

한국현대사 60년은 해방이후 오늘날까지  약 60년에 걸친 한국현대사의 큰 흐름을 정리한 책이다. 6월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가 기획하고 서중석교수가 글을 썻다.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한국현대사를 서술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자유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오늘날의 민주화를 이룩했고, 선배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에 뿌듯함을 느낌 수 있다. 특히 소강상태이고 밀린 듯 보이지만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솟아오르는 우리 국민의 저력에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다만 6장의 마지막 절에 한국을 '민주화와 경제발전의 동시 달성'이라고 하고 있지만 민주화와 경제성장의 관계가 분명해 보이지는 않는다. 어쩌면  사회주의권이건, 자본주의권이건 당시 경제성장에 올인했다는 점, 무능했던 장면정권조차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성장은 당시의 시대정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점이 이승만정권과 박정희정권의 차이점이라고 생각이 든다.

한국현대사 60년의 차례는 다음과 같다.

1장 해방ㆍ분단ㆍ전쟁ㆍ이승만 독재
2장 4월혁명과 민주주의
3장 박정희 군부정권과 학생운동
4장 유신체제와 반독재투쟁
5장 광주민중항쟁에서 6월민주항쟁으로
6장 민주주의의 진전과 남북의 화해


서중석교수의 '비극의 현대 지도자'도 읽었는데 비극의 현대지도자란 여운형, 김규식, 김구, 이승만, 조봉암, 박정희, 장준하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하면 이 중 '5명은 국내 국외에서 민족해방투쟁을 전개하였고, 투옥되었다. 그런가 하면 1명은 미국에서 비교적 편안한 생활을 하였고, 다른 한명은 '황국군인'으로 '특등 일본인'이었다. 뒤의 2명은 외세와 깊숙히 연결되어 있었으나, 앞의 5명은 외세로부터의 자주성을 강력히 견지하였다. 냉전체제에서 후자한테만 권력이 돌아갔는데, 무한 권력으로 영구집권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후진 한국의 야수적 권력 본능을 엿볼 수 있다. 공과 사가 조화를 이루거나, 적시에 권력에서 물러날 수 있는 용기나 지혜를 갖지 못하고 비극적 종말로 질주한 것이다'. 문장에서 후자란 이승만과 박정희이다다.

냉전체제에서 후자(이승만, 박정희)한테만 권력이 돌아갔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아래는 책의 차례이다.

* 남북에서 존경받는 포용과 신념의 민족지도자 (여운형)
* 우사 김규식의 남북협상
* 김구노선의 좌절과 역사적 교훈
* 이승만 대통령의 반일운동과 한국민족주의
* 조봉암의 사회민주주의와 '제3의 길'
* 박정희 대일자세와 파행적 한일관계
* 분단체제타파에 몸던진 장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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