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여행

여행 2016. 8. 12. 13:34

8월 1일(월)부터 일본에 다녀왔다. 혼자 가봐야겠다는 작년부터 하고 있었는데 결국 저지른 것이다.


좀 일찌 비행기를 예약했으면 좀 더 싼 가격에 다녀왔을텐데 늦게 예약하다보니 비행기삯만 적지 않게 나왔다. 


일단 첫날은 고베를 가기로 했다. 어떻게 갈 것인가를 고민했는데 보통은 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난바에서 고베의 산노미야에서 내리는 것 같았다. 아직 기차를 잘 탈 자신도 없어서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게된 배를 타고 고베를 가기로 했다.


내 경우 피치항공을 타고 갔는데 간사히 공항에 내리면 제2터미널이다. 터미널에서 나오면 제1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면 데려다 준다. 제1터미널에서 1층으로 내려온 후 왼쪽으로 쭉 끝까지 가면 고베가는 티켓을 파는 곳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표를 끊으면 된다.



간사이공항에서 고베공항까지 가는 배편이 있는데, 30분이면 도착하고 비용도 외국인은 여권을 제시하면 45%를 깍아준다


표를 끊은 후 12번 승강장에 가서 버스를 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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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먹튀 검증 2018.08.03 15: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2015 서울KYC 평화인권 시민교육

일제강점기 직전부터 100여년 근현대사를 올바로 배울 수 있는 기회!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
평화길라잡이 8기 교육에서 만나보실까요?

평화길라잡이는
매주 일요일 서대문형무소에서
평화와 인권의 관점으로, 역사를 해설하는 자원활동가입니다.

평화길라잡이 기본 교육을 수료하면,
서대문형무소에서 시민들에게 해설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역사, 평화, 인권에 관심있는 여러분~
근현대사 100년!! 역사의 진실을 바로 알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실천하는 '평화길라잡이8기'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1. 평화길라잡이
-평화와 인권의 관점으로, 근현대사의 올바른 진실을 배우기 위한 강의와 답사에 참여합니다.
-매주일요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시민들에게 평화와 인권의 관점으로 해설하는 자원활동가입니다.
-민주화운동 역사의 장소인 ‘남영동 대공분실’ 시민안내 활동을 준비하고, 정기활동을 합니다.  

2. 교육신청 안내
-모집기간 : 2014년 12월 4일(목) ~ 2015년 1월 8일(목)
-모집인원 : 40명
-모집대상 : 만 19세 이상/ 서울KYC 활동목적에 동의하고 평화, 인권, 역사에 관심있는 시민누구나
-접수방법 : 이메일(apply@kyc.or.kr) 또는 구글신청서
-교육생발표 : 2015년 1월 9일(금) / 홈페이지 교육생 공지, 개별 문자 통보
-교육생등록 : 2015년 1월 9일(금)~1월 13일(화)  
-교육비 : 12만원  [신한은행] 100-024-876626 예금주 : 서울KYC  
(교육시작 후에는 환불되지 않음)
*신청서 다운로드





3. 교육수료 및 평화길라잡이 수습활동 안내
-기본교육 과정 중 출석률이 80% 이상 되어야 수료할 수 있습니다. 
(실내강의와 현장답사 포함  4회 이상 결석시는 활동자격 제한)
-기본 교육 수료자에 한해서, 평화길라잡이 안내활동 자격이 주어집니다.
단, 안내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수습활동을 해야합니다.

-수습활동 과정 : 3월~8월 약 6개월
기본교육 과정 이수 후 6개월의 수습활동 기간 중 10회 이상
(매뉴얼작성, 시연, 시민안내 및 모니터링)활동에 참여해야 합니다.
(수습활동 기간 중 활동 횟수가 10회 이상 경우에만 평화길라잡이 신분증 수여)
-평화길라잡이 수습활동 때부터, 서울KYC 회원이 되어야 합니다. (CMS 월회비 납부 의무있음)
-평화길라잡이 수습활동 수료 이후에는 월 1회 이상 활동에 참여해야 합니다.

4. 평화길라잡이 활동기간 중 혜택
-서울KYC 평화길라잡이 신분증 발급
-자원활동 확인서 발급
-서울KYC 정회원으로 각종 활동 프로그램 참가 우대
(근현대사 아카데미, 동아시아 역사이해를 위한 일본 평화여행, 중국평화여행,
600년 역사도시 걷기 시민강좌 등)

5. 문의 서울KYC 사무국
(전화 : 02-2273-2276 또는 02-2273-2206/  seoulkyc@kyc.or.kr )

6. 주최.주관 : 서울KYC(한국청년연합)
   후원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7. 서울KYC 평화길라잡이 8기 기본교육 안내

 ◎ 강의 시간 : 평일 오후 7시 30분 ~ 9시 30분 / 토요일 : 별도 표시
 ◎ 실내교육장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강의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 도보 3분)
 ◎ 주최 : 서울KYC(한국청년연합)     후원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8. 교육장 안내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실내교육장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강의실

-주소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의주로 247 현저동 101번지

◎ 교통편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5번출구 도보3분
 -버스 : 현저동 또는 독립문 정류장 하차
*간선버스(파랑) : 471, 701, 702, 703, 704, 720, 752
*지선버스(초록) : 7019, 7021, 7023, 7025, 7712, 7737
*광역버스(빨강) : 9701, 9703, 9705, 9709, 9710, 9711, 9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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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7.25 16: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This Is How a Prisoner of War Feels About Torture

Stephen Morton/AP

The release of a Senate report on the CIA's former interrogation program brought both political division and shock on Tuesday. While the shock was more universal, the division fell mostly along partisan lines with one notable exception: Senator John McCain.

In a nearly 15-minute speech from the Senate floor, McCain offered what is arguably the most robust defense so far of the report's release, referencing his own experience as a prisoner of war in Vietnam and rebuking his Republican colleagues by endorsing the study's findings.

It is a thorough and thoughtful study of practices that I believe not only failed their purpose—to secure actionable intelligence to prevent further attacks on the U.S. and our allies—but actually damaged our security interests, as well as our reputation as a force for good in the world.

His longtime amigo Senator Lindsey Graham was one of many politicians and intelligence officials to say that the report—which contained graphic accounts of physical and psychological abuse—could damage American interests abroad and that the timing of its publication was "politically motivated."

"The timing of the release is problematic given the growing threats we face," Graham said on Tuesday. "Terrorism is on the rise, and our enemies will seize upon this report at a critical time. Simply put, this is not the time to release the report."

McCain responded directly to the claim. He condemned the use of misinformation to garner support for past CIA practices and linked this history to the current campaign to keep the Senate report under wraps. "There is, I fear, misinformation being used today to prevent the release of this report, disputing its findings and warning about the security consequences of their public disclosure."

But most poignantly, McCain spoke of his own five-and-a-half-year captivity in Vietnam to argue that torture fails to yield credible information.

"I know from personal experience that the abuse of prisoners will produce more bad than good intelligence. I know that victims of torture will offer intentionally misleading information if they think their captors will believe it. I know they will say whatever they think their torturers want them to say if they believe it will stop their suffering."

McCain added (emphatically) that "the use of torture compromises that which most distinguishes us from our enemies, our belief that all people, even captured enemies, possess basic 


Posted by 별이빛나는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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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8월 24일) 금정굴의 신목을 옮겼다.

신목이란 말 그대로 신의 나무라는 뜻인데 샤머님즘에서 하늘에서 신이 내려오는 나무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낼 때 오색 댕기를 매어 둔 나무를 말한다. 


2000년 고양금정굴공대위를 확대개편하면서 매년 위령제 즈음 조형물을 세웠는데 2002년에 '산자들이여 우리를 기억하라'를 세웠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다보니 신목이 썩어들어가고 있다. 방부처리를 하면 되지만 환경오염을 시키기 때문에 방부처리를 지양하다보니 썩어가면서 안전상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어서 이번에 옮기게 되었다.


이번에 옮긴 신목은 고양시 수장고로 옮겨서 보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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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3일(토)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가 주최하는 항일역사유적지 탐방을 갔다왔다. 지난 6월 21일 고양지역의 항일역사유적지 탐방에 이어 두번째로 이번에는 파주지역의 항일유적지 탐방이다. 나는 지난번 탐방에는 가지 못했고 이번에 참여하게 되었다. 


파주지역항일유적지탐방지역. 자료집까지 꼼꼼히 만들었다.




파주 통일동산 옆에 있는 장준하선생묘역


장준하선생묘역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사무국장이 일제시대의 독립운동에 대해서 설명해줬는데 친일로 들어서는 계기가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시기로 나눠서 볼 수 있다면서 대부분의 인사들이 친일로 들어서는 계기가 태평양전쟁이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누군가는 일본의 패망을 보았는데, 누군가는 한민족의 독립의 불가능성을 본 것이다. 



민족화해센터 참회와 속죄의 성당. 남북한이 함께 만든 성당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참회와 속죄의 성당 영상(영상이 안보이시는 분은 https://www.youtube.com/watch?v=aTjadj56P4c 






한글학자 정태진 선생 생가


강란숙시인이 이기형시인의 시를 낭송하고 있습니다.


시를 낭송중인 권옥희시인



파주의 3.1만세운동 기념비




파주자원봉사센터장인 김영선소장님은 파주지역에서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를 발굴하고 알리는데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다.



광탄면사무소에 있는 3.1 독립운동 발상비



독립운동가 심상각선생의 손자인 심재만선생이 심상각선생에 대해서 직접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심상각선생의 묘소입니다.


Posted by 별이빛나는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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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7일부터 10일까지 서울KYC주최로 ‘동아시아史 이해를 위한 중국평화여행_상해, 항주, 남경에서 생각하는 역사 그리고 평화’(후원 동북아역사재단)라는 매우 긴 제목의 긴 여행을 다녀왔다.

처음 여행을 생각할 때는 상해임시정부 유적지를 가는 여행으로 생각을 하고 준비를 했다. 2011년 심양과 대련, 단동을 간 적이 있었는데 여행을 준비한 쪽에서 너무 완벽하게 준비를 한 반면, 우리는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너무 편하게 갔다 온 기억이 났다. 준비해주신 분에 대한 고마움은 컸지만 편한 만큼, 준비하지 않은 만큼 남는 것도 많지 않았다. 2012년과 2013년 일본 평화여행을 다녀올 때는 사전에 공부한 것은 많지 않았지만 항상 사람을 만나고 왔고 그런 만큼 감동과 배우는 것도 컸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사람을 만나지 않고 유적지만 방문하는 것이어서 걱정이 컸다. 중국사회는 민간영역은 있지만 시민사회가 형성되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 줄 단체나 사람이 있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상해임시정부 청사의 김구선생 집무실


다행인 것은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정책실장님이 동행을 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물론 평소처럼 너무 어렵게 설명해 줄 것 같아 걱정이 되기는 했다. 나는 중국 가기 전에 진행한 1차 교육을 참석하진 못했고, 2차 교육만 받았다. 1차 교육에서 박한용실장님이 권장한 책들이 중국에서의 독립운동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김자동선생의 ‘임정의 품안에서’와 그의 어머니인 정정화선생의 ‘장강일기’, 그리고 김학철 선생의 ‘최후의 분대장’과 이원규선생이 쓴 ‘약산 김원봉’을 읽었는데 그 중에서도 정정화 선생의 ‘장강일기’와 김학철선생의 ‘최후의 분대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두 분 모두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당시 상황을 담담하게 알려주셨다.

정정화의 '장강일기'와 상해 임시정부

정정화 선생의 ‘장강일기’를 읽으면서 의외로 임시정부의 활동이 국제정세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상 상해임시정부는 왜 외교노선을 주축으로 했는지 궁금했었는데 일정 정도 해소되었다. 임시정부가 만들어 진 것도 제1차 세계대전이후의 국제정세와 관계가 깊고, 이후의 침체를 겪지만 윤봉길의사의 의거 이후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고 독립운동의 구심체로서 역할을 하려고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가흥의 김구선생 피난처



이번 여행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동경로 중에 상해와 가흥, 항주의 임시정부청사와 임시정부 요인들이 머물던 곳을 견학을 했다. 상해의 임시정부청사는 좁은 공간에서 관람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현지 안내인의 무성의한 안내만 따라다니면서 듣다가 순식간에 출구로 나와 버리게 되는 상황도 당황스러웠다. 잔뜩 기대하고 간 상해 임시정부터였는데 많이 아쉬웠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임시정부 터라면 좀 더 상세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다.

다음날 가흥과 항주의 임시정부 청사 터와 임정 요인들 거주지도 둘러보았는데 가흥의 김구피난처와 항주의 임정유적지는 보전이 잘 되어 있었다. 가흥의 김구선생 피난처가 효성그룹에 의해 복원되었다는 점과 항주의 임시정부유적지가 복원 뿐만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완결성이 높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다만 짧은 시간이어서 충분히 기념관의 내용을 보기에는 어려웠다.

귀국 후에 항주의 임지정부기념관의 판넬을 스마트폰으로 전부 찍은 것을 살펴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서 임시정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1932년 5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체제 재정비, 11월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 1933년 5월 김구와 장개석의 회견, 1934년 8월 한중합작 군사양성, 1935년 7월 민족혁명당 창당, 10월 가흥 남호에서 선상회의를 통해 조직정비, 11월 한국국민당 창당 및 이후의 임시정부의 이동경로 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었다. 독립운동의 각 세력들이 통합을 위해 노력한 과정들을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항주의 임시정부청사 터


비용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미리 답사를 갔었다면 어떤 곳에서 오래 머물고 어떤 곳에서는 장소만 확인하고 가는 방식으로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 사실 상해의 임시정부터는 확인만하고 항주의 임시정부 유적지에서 오래 머물렀다면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을 것 같다.

또한 이번 여행을 통해서 1932년 윤봉길의사의 의거 이전에는 임시정부가 안창호선생 중심의 체제였다는 점, 그리고 윤의사의 의거로 안창호선생이 체포되고 일제의 감시를 피해다니는 어려운 상황속에서 김구선생 중심으로 임시정부의 리더쉽이 형성되었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김학철의 '최후의 분대장'과 조선의용대

김학철 선생의 ‘최후의 분대장’을 읽으면서 조선의용대와 김원봉선생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평소 백범 김구선생보다 현상금이 많이 걸린 분이고 사회주의적 경향의 독립운동가로 기억을 하고 있었는데 김학철선생의 ‘최후의 분대장’과 이원규씨가 쓴 ‘약산 김원봉’을 읽고 이 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약산 김원봉선생이 민족혁명당 창당대회를 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강당



김학철선생의 회고록을 읽으면서 당시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고, 독립운동의 실상이 어떠했는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나중에 박한용실장님이 독립운동에 대해서 지나치게 환상을 갖거나 독립운동을 영웅시하는 것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방문한 곳은 대부분은 김구의 상해 임시정부와 관련된 곳이다. 상해 임시정부의 유적은 아직도 부족하기는 하지만 복원이 되었고 많이 알려졌지만 약산 김원봉 선생 유적은 따로 없다. 임시정부기념관에서 판넬 하나만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백범 김구선생보다 약산 김원봉선생에 더 관심이 많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약산 김원봉선생의 노선이 평범하고 상식적인 노선이라고 본다. 약산 김원봉선생의 의열단활동은 도산 안창호의 독립운동 준비론과 이승만의 외교독립론과 다르고, 당장 무력독립을 주장하는 무장독립론과도 다르다. 당장 무장독립을 하자는 것은 맞는 이야기이지만 군대조차 제대로 보유하지 못한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의열투쟁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약산 김원봉은 의열투쟁에 최선을 다하고 그 운동의 한계에 봉착해서 군대를 양성해서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민당정부의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하고 조선의용대까지 조직하게 된 것이다. 국민당정부의 황포군관학교는 제1차 국공합작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중국의 좌우합작이 독립운동의 좌우합작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것은 조선의용대원들이 화북으로 떠날 때 약산 김원봉선생이 함께 가지 못했는가를 설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직접 일제와 맞서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정부라는 틀 속에서 군대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남경의 이제항 위안소 터


이번 여행에서 약산 김원봉 선생 관련 유적지는 남경의 금릉대학이 전부였던 것 같다. 약산 김원봉선생은 베이징과 상해, 남경에서 주로 활약했는데 아직까지 관심도 적고, 남북 모두에서 버림받아서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약산 김원봉선생을 사회주의자로 보든 또는 민족주의자로 보든 그 시대적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 혁명과 독립운동

이번 여행지 중에는 중국혁명운동과 관련된 곳도 방문하였다. 손중산고거, 로신기념관관, 송경령기념관(만국공묘), 저보성기념관 그리고 남경대학살기념관을 방문했다. 손문은 신해혁명을 일으켜서 삼민주의로 중화민국을 건국한 사람이다. 손문은 광동성에서 호법정부를 세울 때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정식으로 인준해 준 사람이다. 손문의 부인인 송경령은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 많은 애를 써 주었다. 저보성은 손문과 함께 신해혁명을 일으킨 혁명원로로 백범 김구가 도피생활을 할 때 헌신적으로 도와주었다. 장제스는 윤봉길의사의 의거이후 우리 나라의 독립운동을 위해 도와주었다. 중국의 공산당도 마찬가지였다.

손문선생의 옛집


이번 여행을 하면서 우리의 독립운동이 독립운동을 하는 지역의 특성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운동과 함께 연계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독립운동가들 중에 일부는 중국 공산당의 남창 봉기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대장정에도 참여했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독립운동에 전력하기에도 벅찬 상황에서 중국의 혁명운동에도 참여하는 것이 올바르냐의 문제뿐만 아니라 역량상 맞느냐의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를 생각해 본다. 백범 김구선생과 약산 김원봉선생은 중국의 국공합작과 분열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약산 김원봉선생은 화북으로 동지들을 떠나보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국적을 떠나 인간이 각종 구속으로부터 해방되는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같은 이상이 있었기에 함께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또한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공부를 하기는 했지만-물론 여전히 잘 정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국제정세를 절대 도외시 했서는 안된다는 점을 좀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누가 더 열심히 독립운동을 했느냐보다는 어쩌면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우리가 어떤 모습을 갖고 있어야 했느냐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했다고 본다. 돌이켜보면 힘이 있든 없든 생각이 같든 다르든 적어도 대외적으로 우리는 하나의 정부를 유지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상해 임시정부와 백범 김구선생의 완고함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연합국의 일원이 되려고 무던히 노력한 점들에 대해서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나라를 잃는 과정을 보면 처음 청일전쟁으로 청나라가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잃었고, 러일전쟁으로 조선이 의존했던 러시아도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후 영일동맹과 미-일의 가쓰라-테프트 밀약으로 조선은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독립은 그 반대의 과정으로 나아가야 했다. 하지만 연합국의 어느 나라도 임시정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중국이 우호적으로 지원해줬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를 유지하고 끝내는 내부의 이질성을 담아낸 통일전선 정부를 만들고 유지한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기에 해방후의 갈등속에서도 분단과 전쟁을 막아내려는 움직임이 있어고 오늘날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의 씨앗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남경대학살 기념관의 아쉬움

마지막으로 남경대학살기념관에 가서 느낀 점을 적어 본다. 규모의 어마어마함에 놀라기도 했지만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왔던 것은 기념과 2층에서 본 판넬의 내용이다. 판넬에는 1894년부터 1945년까지 50여년의 역사에서 일본은 침략만을 했을 뿐이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박한용실장님은 아시아에서 일본의 근대역사는 침략의 역사였다는 내용의 전시라는 설명을 해 주었다. 즉 근대 중국에게 일본은 침략자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일부 사람들처럼 침략자이지만 물질적 근대화의 초석이라는 양면적 인식이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중국이 부러웠다. 그러면서 이런 질문들을 던져보았다. 근대 아시아에서 일본은 무엇이었을까? 중국은 무엇이었을까? 한국은 무엇이었을까? 나 스스로에게 우리들 스스로에게 던져 보고 싶다.​

남경기념관. 내부의 전시내용보다 외부의 전시물이 훨씬 와닿았습니다.



난징 대학살 기념관에서 느낀 아쉬움도 있다. 1층의 전시실 마지막의 에필로그 판넬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We should not forget that small and weak nations will always be bullied and invaded by powerful nations' 결국 힘이 약하면 강대국에게 침략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인데 중국과 같이 큰 나라가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이 놀라왔다. 또한 난징대학살에서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 단지 힘이 없어서 당했으니 힘을 키워야 한다는 애국주의만은 아니라고 본다. 침략자라고 다 일본처럼 학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전쟁자체가 학살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시는 전쟁이 나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전시관 내에 써있는 마지막 결론. 힘을 키우자?



여행은 식사와 같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 나와도 편한 사람과의 식사가 아니면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없듯이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가진 여행이라도 동행자가 불편하면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없다. 식사의 내용이 부실하더라도 편하고 좋은 사람과 식사를 하면 천천히 음식의 맛을 느끼면서 수다를 떨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식사를 한다. 하지만 불편한 사람과 식사를 하면 할 말도 없고 그저 먹는 것만 생각하고 빨리 먹고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이번 여행은 편한 사람들과 함께 해서 좋았다.


서울KYC평화길라잡이 이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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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목)~18일(금)에 진안군 마을만들기지원센터와 완주군 경제순환센터를 견학하고 왔습니다. 다음 내용은 시에 보낸 제 소감입니다. 참고하세요.


□  진안군 마을만들기지원센터


○ 중점사항

  • 오랜 기간 한 우물을 판 구자인 소장의 경험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음.
  • 핵심은 더디 가더라도 자치의 원칙을 지키며 천천히 가는 것. 단기 성과주의에 매몰되어서는 안됨.
  • 마을만들기의 핵심은 사람. 행정은 시스템으로서 일관성을 갖고 마을을 만드는 사람들이 지치지 않고 오래 갈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 따라서 최소한 개입하고 주민들의 자발성과 자율성을 키우는 서포트 역할에 충실해야 함. 행정은 주민이 갖지 못한 전문성을 지원해주고, 시행착오를 할 수 밖에 없는 주민자치의 활동에 대한 코디네이터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 중간지원조직인 마을만들기지원센터를 (사)마을엔사람이 독립채산제로 운영하는 것이 특이했음. 

진안군마을만들기 지원센터





○ 소감(우리 시에 접목할 지점)
  • 진안군 마을만들기지원센터는 행정과의 대등하고 긴장감 있는 협력관계를 만들기 위해 행정에 무리하게 요구하거나 또는 행정이 요구하는 사업을 다 받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 내부 자치역량강화를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단체장이 바뀌어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마을만들기 사업을 할 수 있었음.
  • 단체장의 변화에도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것은 높이 평가됨. 다만 이 부분이 수도권지역에서도 가능할지는 회의적임. 전북은 당은 그대로이고 단체장만 변경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외풍에 덜 시달릴 수 있다고 봄.
  •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지역주민의 자치역량을 강화하는데 주력해야겠지만 행정의 적극성 또한 요구된다고 할 수 있음. 
  • 다만 행정이 지나치게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여 주민자치가 일시적, 단기적으로 실패할 수 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됨.

구자인소장님이 진안군의 사례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구자인소장을 빼고 진안군 사례를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진안에서 10년을 일했고, 그 중 8년은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했다고 합니다.




□  완주군 지역경제순환센터
  • 완주군의 경우 군수가 희망제작소의 연수프로그램을 마치고 주변의 진안지역등의 성과등을 종합하여 마을만들기를 진행함.
  • 행정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마을을 살리기 위한 활동을 진행한 케이스로 보임.
  • 강사가 끊임없이 강조했던 것은 '진안은 인구감소와 지역경제 쇠퇴라는 목전의 위기속에서 발버둥을 치는 과정에서 마을만들기를 진행했다' 점임.
  • 처음에는 지역자원조사를 시작으로 지역이 갖고 있는 작은 자원으로부터 시작해서 이러한 것을 서로 연계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데까지 성공함.
  • 이렇게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했으나 처음 의도했던 마을이라는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는지는 아직 유보적임. 또한 완주군의 성공?은 전주라는 든든한 배후도시가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함.

완주군지역경제순환센터의 모습. 폐교된 학교를 재활용하고 있었습니다.





□  전체적인 평가
  • 진안군과 완주군은 모두 농촌지역으로서 마을만들기가 생존의 문제였음. 이에 대해 진안군은 내부 자치역량강화를 통한 장기적인 전략을 취했고, 완주군은 행정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서 성과를 거둠.
  • 이 두 지역은 자신의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마을만들기에 나섰다는 점에 주목해야 함. 과연 고양시에 마을만들기 또는 주민자치가 절박한 문제인가? 주민자치는 고양시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인지에 대해서 판단이 필요하다. 혹시 주민자치가 절박하지 않는데 대의명분과 시대적 유행때문에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 즉 우리의 문제에 천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 고양시는 직장과 주거가 분리된 도시이고, 이는 단기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 고양시는 농촌과 도시가 공존하고, 도시는 구도심과 신도시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 주민자치는 직장과 주거가 분리된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성, 노인, 청소년이 중심이 되어서 할 수 밖에 없다. 농촌과 도시, 도시중에서 구도심과 신도시가 당면하는 문제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주민자치의 내용과 목표가 다를 수 밖에 없다. 농촌은 자치를 통한 소득향상, 구도심은 도시재생을 통한 기반시설 활성화와 공동체 회복, 신도시는 도시민의 이해와 요구를 담아내는 유연하고 자유로운 마을공동체가 필요하다. 
  • 행정(중간지원조직)은 이러한 과정에 매개자로 역할을 해야 한다. 도시와 농촌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구도심과 신도시는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내용적으로 로컬푸드, 여성과 노인의 경제활동 참여, 청소년들의 지역사회에서 주체로서 참여 등이 필요하고, 형식적으로 직능단체 및 시민사회단체의 적극적인 참여,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경제영역의 확산이 필요하다. 
  • 결국 자치는 우리 시가 안고 있는 지역적 불균형과 소비도시로서의 한계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완주군지역경제순환센터 교육은 이영미선생님이 해주셨는데, 예전에 희망제작소에서 일하다가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Posted by 별이빛나는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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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버크하우스 2014.07.21 18: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오늘도 편안한 하루 되세요. ^^

  2. BlogIcon 유병완 2014.07.21 2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았습니다.

일제시대 포목상을 하던 일본인 히로쓰가 살던 집이다. 당시 어마어마한 돈으로 일본의 전통 목조가옥을 지었다.




입구. 실재로는 이 곳 말고도 입구가 많다. 



대나무를 구원서 모양을 내어서 창을 만들었다. 아름다웠다.



인도네시아쪽에서 가져온 나무인데 무척 단단한 나무라고 한다.



해설을 해 주었던 해설사 선생님.



정원에 일본 지도를 그려넣은 연못을 만들었는데, 이곳 정원양식은 자연 그대로 인공적인 부분을 배제한 스키야마 양식이라고 한다.


남천이라는 나무로 일본에서 서로 선물을 하는 나무라고 한다.


내진설계를 해서 목조건물을 지은 흔적



왼쪽인 남성, 오른쪽이 여성


손을 씻던 곳


다다미방. 두 장을 합하면 한평이 된다고 한다. 원래는 지그재그로 배치했는데 기술력이 부족해서 그냥



2층에서 본 모습


온돌을 때던 흔적... 이곳에서 불을 넣었다고 한다.



유일한 온돌방


여성들이 드나들던 곳에서 본 모습.


식사준비등은 이 곳 문을 나가면 별도 건물이 있는 곳에서 했다고 한다.


구르마가 들어올 수 있도록 비스듬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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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동일본식가옥 / 문화유적

주소
전북 군산시 신흥동 58-2번지
전화
설명
-



Posted by 별이빛나는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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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바람국화 2015.05.03 23: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군산여행을 다녀왔는데, 히로쓰가옥이 보존을위해 내부 공개를 더이상 안하고 있어 외부만 둘러보고 나왔답니다.
    안타까운마음에 검색해보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덕분에 대리만족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군산 동국사

여행 2014. 7. 21. 12:48

며칠전 군산의 동국사에 다녀왔다.


일제시대 만들어진 절로 지금은 조계종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대웅전 안에서는  '씁쓸한 기억, 신사와 무단통치 <조선명당엔 신사가 있었다>' 전시하고 있었다.


건축양식은 에도시대 양식이다. 몇번의 증수를 거쳤다고 한다.







입구에 있는 대문같은데 원래 소화 9년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누군가 소화라는 부분은 훼손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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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사 / 문화유적

주소
전북 군산시 금광동 135-1번지
전화
설명
-




Posted by 별이빛나는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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